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음성읍 용산리 이신 충효문(陰城邑 龍山里 李莘 忠孝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음성읍 용산리 이신 충효문(陰城邑 龍山里 李莘 忠孝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2. 11. 13:33

 

 

 

 

 

 

 

 

 

 

 

 

 

 

 

 

 

 

 

 

신니면 동막에서 음성읍 용산리로 너머가는 고갯길 못미쳐에 왼쪽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위는 정리정돈 잘되여 있으며 누구의 손길이 있는지 깨끗하게 단장되여 있다

정려각안에는 전력부위용행위부사용충효이신지문(展力副尉龍驤衛副司勇忠孝李莘之門)이라고 적혀있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또한 충효문이라고 새겨져 있는 비석이 일기 존재한다.

 

한겨울에 잉어를 잡는다던가 또는 산신령이 현몽하여 방법을 알으켜 준다거나 하는것은

효에 대한 극진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일것이다.

지극한 효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그시대의 민간의 통념을 나타내고자 하는 방법인 듯 하다.

 

음성읍 감우리에도 같은 내용의 설화가 내려오고있다.

현재 감우리에는 설화만 전해지고 용산리에도 같은 내용의 설화를 지닌 이신의 충효문이 위치하고 있다.

용산리에 전해지는 이신의 효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서진시대때의 효자 왕상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지금부터 4백년전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현 음성읍 용산리)라는 마을에는 이신이라는 분이 홀아버지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신의 나이 열 세살때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고치기 어려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는 온 동네 어른들을 찾아 다니면서 약과 치료방법을 배워 온 정성을 다하여 간호해드렸다.
산속을 해매여 약초를 캐야 했고 살림이 가난해서 이집 저집 다니며 밥을 빌어다 아버지를 받들었다. 가을이 지나 추운 겨울이 되니 아버지의 병은 점점 더 위독하여 밤을 새우며 아버지 옆에서 병간호를 하는 그의 마음은 괴롭고 돌아가신 어머니생각이 간절하게 나서 몰래 눈물을 자주 흘리기도 했다.
이신은 그날부터 밤마다 장독 위에 정화수를 길어다 놓고 밤마다 하느님께 빌면서 "하느님 아무리 정성을 다 바쳐도 아버님의 병환이 낫지 아니하오니 저의 정성이 부족함을 용서하시옵고 불쌍하신 저의 아버님 병환을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은헤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빌었다. 그런데 어느날 밤이 되어 이신이 아버지 옆에 누어서 잠이 들자 꿈에 수염이 하얀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신아 이 동네 앞 냇가 깊은 물에 잉어가 있으니 그것을 잡아다 고아드리면 너의 아버지 병이 낳을 것이다."하고 가르쳐 주어 신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신은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는구나.
어서 나가 잉어를 잡아야지"하고 날이 밝자 신은 동네 앞 개울가로 달려가 깊은 소(沼)를 찾았다. 그는 연장도 없는 터이라 이리 저리 궁리한 끝에 "내 몸이 더우니 얼음을 녹이리라."하고 윗저고리를벗고 배를 내 놓은후 얼음 위에 엎드렸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얼음은 녹아 갔으나 신의 몸은 얼름처럼 굳어갔다. 신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또 스님이 나타나 "신아 어서 일어나 잉어를 잡아라!"하고 일러주어 놀라 깨보니 신의 배 밑에 얼음이 녹아 큰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큰 잉어 한마리가 입을 내밀고 물을 먹고있었다.
이에 신은 "잉어야 네가 아버지 병을 낫게 해주면 네가 하라는 대로 할께 말해봐" 그러니까 잉어는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이에 신은 물속으로 양손을 넣어 잉어를 붙잡았다.
신은 잉어를 들고 집에와서 솥에 물을 붓고 삶았다.
신의 머리 속에는 아버지를 위하여 죽어가는 잉어가 한없이 불쌍하고 고맙기도 했다.
신은 그날밤 하느님께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잉어를 잡수시고 꼭 병이 낫게 하여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드린 다음 잉어를 권해 드렸더니 아버지는 잉어를 맛있게 잡수시고 나더니 며칠후 차차 병세가 좋아졌다.
이에 신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잉어에게도 고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후 이신은 임진왜란때 전사한 조부의 뒤를 이어 군대에 들어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한다.
그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동네 어른들은 신이 잉어를 잡은 소(沼)가 있는 시냇가 언덕위에 충효문을 세우고 잔치를 열어 이신의 효행을 칭찬해 주고 있다.

오늘도 그 충효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신의 효행을 칭찬해 주고 있다. 그 충효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신의 효성을 다시 생각한다고 한다.
참고문헌 : 《겨레의 얼》,(충북교위 발행),《忠北傳說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