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백곡면 명암리 이교영효자비(栢谷面 明岩里 李敎英孝子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백곡면 명암리 이교영효자비(栢谷面 明岩里 李敎英孝子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2. 27. 06:59

 

 

 

 

 

 

 

 

 

 

 

 

 

 

 


이교영[1890~1976]은 어머니 달성서씨가 친가에 갔다가 병이 나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급해 왼쪽 장지를 끊어 어머니께 수혈하니 나았다. 그러나 그해 5월 다시 어머니가 병이 재발하자 왼쪽 무명지를 끊어 수혈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교영 효자비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 동암마을에 위치한다. 진천군청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후 다시 벽암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백곡저수지 방면으로 약 5㎞ 직진한다. 건승교를 지나 건승리, 명암리 방면 우측으로 약 2.5㎞ 가면 명암리 동암마을에 이르게 된다. 이교영 효자비는 입구 도로변 왼쪽 산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교영 효자비는 방형 대석 위에 높이가 135㎝, 너비가 49㎝, 두께가 19㎝의 오석(烏石)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가첨석을 얹었으며, 보호각 안에 있다. 보호각은 1995년 4월 6일에 세운 것으로 정면 1칸, 옆면 1칸으로 된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보호각 정면에 ‘효자비각(孝子碑閣)’이란 현판이 있으며, 사면을 모두 홍살로 막았다.
이교영 효자비는 3면비로서 앞면에는 ‘효자이공교영지비(孝子李公敎英之碑)’라고 쓰여 있고, 1956년 10월 백곡면장 김진호(金振昊)가 글을 짓고 진천군수 조직상(趙稷相)이 전액을 썼다.

이교영 효자비동암마을 입구 도로변 왼쪽 산자락 돌계단 위에 있다. 왼쪽에는 이교영 효자비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효자비 역시 보호각 안에 위치하고 있어 보존이 잘 되고 있다.

이 교영은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의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효자.

이교영(李敎永)은 본관이 성주(星州)로, 1890년(고종 27) 외가인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에서 태어나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이교영은 평소 효성이 지극했는데, 42세가 되던 1931년 3월 어머니가 음성의 친정에 갔다가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서 극진히 간호하였다. 한 달 여가 지나도 효험을 보이지 않자, 4월 10일 위급함을 보다 못해 왼손 장지를 끊어 손가락의 피를 마시게 하여 병이 낫도록 하였다. 같은 해 5월 어머니의 병이 재발하자 다시 왼쪽 무명지를 끊어 피를 드렸으나, 끝내 효험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에 어머니의 시묘살이에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의 병환에도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으며, 돌아가시자 아침·저녁으로 3년간 시묘하였다.

 

진천군
내의 유림들이 이교영의 효행을 기려 1956년 10월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효자비를 세웠다. 현재 효자비는 백곡면 명암리 동암마을 입구 도로변의 왼쪽 산자락 끝에 세워져 있다. 비제는 진천군수 조직상(趙稷相)이 썼으며, 비문은 백곡면장 김진호(金振昊)가 지었다. 1995년 4월 6일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보호비각이 건립되어 그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