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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군도안면연종록부부정효각(曾坪郡道安面延種祿夫婦旌孝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군도안면연종록부부정효각(曾坪郡道安面延種祿夫婦旌孝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8. 5. 22:12

 

연종록부부정효각(延種祿夫婦旌孝閣) : 연종록과 그의 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 부부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1934년에 연종록의 6대손인 연병택(延秉澤)이 주선해 마을사람들이 세운 정효각이다. 화성1리 ‘성도리’ 91번지 도안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다. 지금의 정효각 건물은 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안에는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곡산연공종록배효부증영인순흥안씨지려상지십년기미구월일명정(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谷山延公種祿配孝婦贈令人順興安氏之閭上之十年己未九月日命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연종록은 본관이 곡산(谷山)이며 연사종(延嗣宗)의 후손이다. 자는 성복(聖福)이고 호는 모증재(慕曾齋)이다. 연종록은 비록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성품이 온유하고 부지런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는 나무를 해다 팔아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제일 큰 행복으로 여겼다. 40세가 되어 늦게 결혼한 연종록은 더 없는 기쁨이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아내 순흥안씨 역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일도 열심히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며느리의 효심이 깊은 것을 하늘에 감사하고 정한수를 떠놓고 손자를 낳게 하여 달라고 빌었다. 드디어 아들을 얻은 부부는 한없이 기뻐한 나머지 달만 밝으면 밤에도 낮과 같이 열심히 일만 하였다. 열심히 노력한 부부는 생활도 넉넉하여지고 재산도 늘어나 잘 살게 되었는데, 마을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 후 노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가산을 팔아 약을 쓰고 의원을 불러 치료를 다하였으나 병이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늙으신 어머니의 변을 직접 맛보면서 탕약을 목욕을 하고 자신이 노모 대신에 아플 것을 항상 하늘에 기원하였다. 그는 노모의 병이 위독하게 되자 그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목숨을 연명시킨 효자였다. 그의 부인 순흥안씨도 연종록과 함께 부모를 극진히 공양했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입에 넣어 드렸다. 그러나 이러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노모는 결국 세상을 뜨게 되었다. 부부는 애절하게 통곡을 했으며, 매일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곡을 해 무릎이 물렀다. 조정에서는 철종 10년(1859)에 부부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연종록에게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중직하고 정려(旌閭)를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