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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이월면 노원리 신잡영정(梨月面 老院里 申磼 影幀) 본문
신잡(申磼)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형이다. 1583년(선조 16)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正言)을 거쳐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한성부윤(漢城府尹),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거쳐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2등에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09년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헌(忠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신잡 영정」은 신잡의 67세 때 모습을 그린 것으로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중요 의식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사모의 문양은 크고 대담하게 표현되었으며, 형태는 풍만하고 모자의 높이도 다소 높은 편이다. 얼굴은 굵고 가는 변화가 어느 정도 나타나 있는 황갈색의 필선으로 기본 윤곽선을 묘사한 뒤, 윤곽선 주변을 따라서 미묘한 층차를 주며 담갈색으로 우리는 번짐 기법을 사용하였다. 얼굴 피부에는 약간씩 붉은 채색을 하여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표현 수법을 쓰고 있으며, 맑은 갈색 담채로 얽은 자국을 표현하였다. 수염도 필선에 짙음과 옅음의 차이를 주어 가며 세밀하게 묘사한 뒤, 다시 엷은 묵으로 섬세하게 우려서 수염의 덩어리까지 드러내고자 하였다.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의 옷주름은 짙고 강하며 직선화된 먹선을 사용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묘사한 뒤 자주색과 군청색 담채로 채색하였다. 그리고 단령의 운보문(雲寶文)은 먹선으로 문양의 외곽을 선묘한 뒤 내부의 문양을 더 짙은 먹으로 칠하였다. 영정의 왼쪽 하단, 관복의 앞자락과 뒷자락이 벌어지며 보이는 안감과 바지를 녹색과 청색의 강한 석채로 처리함으로써 관복의 단순한 무채색과 바닥의 화려한 석채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는 절묘한 조형적 효과를 얻고 있다. 또한 단순화된 옷주름과 운보문의 비구조적인 묘사가 결합하여 초상화 전체에 매우 강한 단순성과 평면성을 부여해 준다. 이는 한편으로 주인공의 강한 정신세계를 전하는 독특한 심미적 효과를 주고 있다. 흉배는 구름과 갈대를 배경으로 기러기 두 마리를 그린 운안흉배(雲雁胸背)이고, 각대(角帶)는 삽금대(鈒金帶)이다. 흉배와 각대에는 금분을 사용하여 고귀한 의미와 장식적 효과를 강조하였다. 흉배 상부의 금분이 수염 위에 칠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금분은 그림을 거의 완성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칠했음을 알 수 있다. 발을 올려놓는 의답의 윗면에는 매우 촘촘한 사선으로 돗자리의 올을 일일이 표현하였으며, 바닥의 채전은 가는 먹선으로 문양의 윤곽을 표현한 뒤 그 안에 석채(石彩)를 다소 거칠게 점묘(點描)하였다. 영정을 그린 비단은 올이 촘촘하고 고우며 폭이 넓은 통폭을 사용하였으며, 세월이 오래 흐른 까닭으로 군데군데 약간의 박락(剝落)이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그동안 「신잡 영정」이 1604년 또는 1607년에 김이섭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는 김이섭이 그린 다른 그림과 혼돈한 데서 초래된 와전이다. 김이섭이 그린 초상화는 1607년 신잡이 67세 되던 해에 선조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대동수춘연(大同壽春宴)을 거행한 뒤 이에 참석했던 노인들을 그린 화첩본 화상이다. 그런데 현재 노은영당에 보관되어 있는 「신잡 영정」은 최상의 화원만이 그릴 수 있는 전문적인 초상화이다. 「신잡 영정」이 17세기 초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많이 갖추고 있는 점으로 볼 때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에 녹훈된 뒤 그려진 공신도상일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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