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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 지암리 지장사 터 멧돌(鎭川邑 芝岩里 地藏寺 터 멧돌) 본문
진천읍 지장골 잠덕산에 지장사터가 있다는 글을 본것이 전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걸까? 일단 지장골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 산40-8번지라는 주소를 네비에 입력시키니 별 효과가 없다
그저 지암리를 찾아 지암리 4구인 지장골을 찾는 것이 훨씬 편하다
마을 표지석이야 큰길가에 있으니 찾기는 쉽다.
마을길을 따라 들어서면 여는 농촌과 같이 한적하다,인적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마을초입에 있는 지장골 경로당앞에 털신이 몇켤레 보인다
문을 두드리니 동네 할머님들이 모여 계신다 지장골 절터에 대해 물으니 그 중 한분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차가 들어갈수 있는곳까지 차를 몰고 잠덕산쪽으로 올라간다
중간쯤 가니 철문이 있고 사유지임을 알리는 팻말이 있다
문이 잠겨 있는걸로 보아서 주인은 출타중인 듯 개들의 합창이 온산을 울린다.
길을 따라 잠덕산을 오르니 특용작물을 재배중인지 임산물 채취금지와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프랑카드가 붙어있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저 멀리 커다란 맷돌이 보인다.
지장사(地藏寺)가 지장보살을 모신 절이어서 마을 지명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지장사 터에 관하여 『문화유적총람』에는 “고려시대에 지장보살을 모셨던 사찰이 있었다고 하여 지금까지 지장골 절터라고 전해지는데, 사찰이 있었던 유지와 와편을 발견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지장사 터의 정확한 존폐 시기는 문헌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도 지장사의 존재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데, 일제강점기의 지리지에는 지장사가 충청북도 진천군 남쪽 2리 지점의 잠덕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이곳은 영조때 성리학의 대가 봉암 채 지흥이 이곳을 다녀가다 시한 수를 지어 놓은 것이 상산지 및 진천군지에 전해온다.
이와같은 사실로 보아 지장사는 영조때까지는 존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래 지옥에서 고생하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마련이 된 듯하다.
그것은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지장사터 맷돌의 짧은 쪽 길이는 153㎝, 긴 쪽 길이는 163㎝이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맷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매판까지 같은 돌로 제작하였다. 이 맷돌이 중요한 것은 매판 둘레 윗면에 ‘만력사년병자대화주신여비구천□유□(萬曆四年丙子大化主信女比丘天□有□)’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 명문으로 인하여 지장사터 맷돌이 1576년(선조9년)에 제작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장사터의 맷돌에는 제작연대가 명기되여 있으므로 민속적인 가치가 크다.
맷돌의 크기가 크며 맷돌에 제작연대가 명기되여 있어 지장사의 규모가 컷음을 알수있다
경로당에 계시는 할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지장사의 크기를 가늠할수있는 말씀을 하신다
지장사에서 저녁에 쌀을 씻으면 그 쌀을 씻은 물이 동네까지 내려왔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씀해 주신다
맷돌의 제작년대로 유추해 보면 조선중기까지는 지장사가 큰 사찰이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혹여나 지장사터의 맷돌을 보기위하여 걸음을 하실분이 계시면 답글로 문의를 하시면 힘들지 않게 찾을수 있도록 길라잡이를 해드리고 싶다
오늘도 흐르는 세월이 맷돌위로 앉아 맷돌은 그 옛 영화를 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장사가 있던 터의 모습은 간곳도 없고 커다란 맷돌하나 짝 잃어버리고 세월을 깁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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