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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면 오류리 박순사당(大所面 五柳里 朴淳祠堂) 본문
조선 후기에 건립된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 있는 음성박씨 선조 박순의 사당.
박순 충신문은 박순 사당이라고도 하며, 2002년 5월 18일 음성군 향토문화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선조인 박순은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성계의 명으로 회군 승인을 얻기 위해 우왕에게 갔던 박순은 조선이 개국되자 상장군이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여러 왕자들을 죽이고 등극한 태종의 횡포에 분노하여 함흥에 머물렀다. 태조가 수차례 파견된 사자들을 모두 죽이자 박순이 사신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1402년(태종 2) 함흥에 내려가, 태조로부터 환궁하겠다는 확약을 받고 돌아섰다.
한편
박순을 죽이자는 측근들의 간청에 태조는 용흥강을 건넜으면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박순은 돌아오는 도중에 급병 때문에 지체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태종은 박순의 공을 치하하며 관직과 토지를 내리고, 자손들을 등용할 것을 명했다.
남편의 부음을 듣고 자결한 부인 장흥임씨에게는 묘지를 내렸으며, 충신·열녀의 두 정려문을 세우게
했다.
원래는 1686년(숙종 12) 삼성면 상곡리에 세워졌으나 시간이 흘러 쇄락하자 1910년 현재 위치에 이건(移建), 봉사(奉祀)하고 있다. 1952년과 1978년 2차례에 걸쳐 단청을 보수하였고 1997년 중건하였다.
297.522m²의 대지 위에 놓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솟을삼문과 담장이 갖추어져 있다. 3칸 중 가운데 칸이 박순을 봉안한 충민공 부조묘(박순사당)이다. 사당 왼쪽에는 박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충신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박순 처 장흥임씨 열녀문과 박호원·박정규 효자문이 같은 건물 안에 있다. 또한 사당 안에는 박순의 업적을 자세히 기록한 10편의 목판 활자본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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