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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오궁리 규정영당(甘谷面 梧弓里 葵亭影堂) 본문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
신후재는 조선 숙종 때의 사람으로, 동부승지, 강원도관찰사, 좌부승지, 안변부사, 우승지, 좌승지, 진하겸사은부사, 승정원도승지,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 한성판윤 등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 3월 갑술옥사 때 여주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 4월에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 오갑으로 돌아와 백련을 심고 ‘백련재(白蓮齋)’를 지어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규정집(葵亭集)』이 있다.
규정영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1칸은 툇간이다. ‘규정영당(葵亭影堂)’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영당 주변에 돌담장을 돌리고
영당 앞에 솟을삼문을 세웠다. 솟을삼문 왼쪽에는 ‘백련서재’라는 재실이 있는데, 이곳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4호인
「신후재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신후재는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으로 은거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 아버지는 현감 신항구(申恒耈)이다.
신후재는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지평·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으며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도승지 등을 지냈다.
그 후
사은겸진주주청부사(謝恩兼陳奏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강화부유수·개성부유수·한성부판윤을 지냈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西人)에 의해 여주(驪州)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 석방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은거하며 백련재(白蓮齋)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 『규정집(葵亭集)』이 있다. 「신후재 영정」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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