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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면 오궁리 백련서재(甘谷面 梧弓里 白蓮書齋) 본문
백련서재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신후재가 수학하던 곳.
백련서재는 조선 숙종 때 한성부판윤을 지낸 서암 신후재(申厚載)[1636~1699]가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던 장소이다.
신후재는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유배되었다가 1697년(숙종
23)에 석방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았다. 서재(書齋) 앞 연못에 백련 꽃이 있는데, 이는 신후재가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백련 뿌리를 심은 것이라고 한다. 백련서재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붙여졌다.
1. 배치 형식
전체는 동향으로
3단을 정지한 후 첫째 단에 연못을 설치하고, 중앙에 둥근 모양의 섬을 하나 두었으며, 그 뒤로 둘째 단에는 정면 4칸·측면 1칸 반에 꺾이어서
정면 3칸·측면 1칸 반을 덧붙인 ‘ㄱ’자 형을 이루는 납도리 계통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축조되어 있다.
맞은편에는 정면 3칸
반·측면 1칸 반에 꺾이어서 정면 3칸·측면 1칸 반을 덧대어 역시 ‘ㄱ’자 형을 이루며, 관리사가 납도리 계통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위치한다.
전체적으로 민가 건축에서 나타나는 ‘ㅁ’자 형의 건물을 지나면 오른쪽 끝에 문이 있고, 이 문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일정 공간을 두고 자리 잡은
셋째 단에는 솟을삼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정면 3칸·측면 2칸의 영당(影堂)이 개방형 평면으로 배치되어 있다.
2.
평면 및 구성형식
영당 바닥은 하나로 된 통간(通間)으로 하여 장마루를 깔았는데, 이는 근래에 마룻귀틀을 짜서 세로 방향에 짧은
널을 깔고 가로 방향에 긴 널을 깔아 ‘정(井)’ 자 모양으로 짠 마루인 우물마루에서 개조된 것으로 보인다.
창과 문은 정면 3칸에
모두 4분합 띠살문을 달았으며, 옆면과 뒷면은 흙벽으로 막음 처리를 하였다. 기둥의 간격은 정면 2칸 모두 2.53m로 나누고, 옆면의
퇴간부(退間部)는 1.34m로 좁게 나눈 뒤 나머지 1칸은 2.53m로 넓게 구획을 지었다.
구조는 높이 30㎝의 자연석으로 축조된
기단 위에 전면 퇴간부는 원형의 다듬돌 초석을 놓았으며, 나머지 부분은 사각형의 다듬돌 초석 위에 주경(柱俓) 25㎝의 둥근기둥과 21×21㎝의
네모진 기둥을 혼용하여 세웠다.
기둥 윗부분은 공포는 무출목(無出目) 이익공(二翼工) 계통의 형상을 보이나, 일반적인 익공(翼工)
양식에서와는 달리 익공 뿌리가 위치해야 할 곳에 짧은 네모반듯한 부재가 주두(柱頭, 대접받침)와 맞물려 있으며, 그 끝머리에 이익공 우설(牛舌,
전각의 기둥 위에 덧붙이는 소의 혀와 같이 생긴 장식)을 붙이고, 일익공(一翼工) 우설은 하부의 기둥에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익공 양식에서 벗어난
형태를 띤다.
봉황의 머리 모양으로 만든 봉두(鳳頭)와 방초막이 못의 대가리를 감추기 위하여 연꽃 봉오리처럼 만든 연봉(連峰)의
조각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창방(昌防, 건물의 기둥 위에 건너질러 장여나 소로, 화반을 받는
가로재)으로 얼개를 만든 기둥 사이에는 소루(小累, 접시받침)가 6구(具)씩 비교적 많이 배치되어 주심도리(柱心道里)와 장설(長舌)을 받치고
있다.
가구(架構, 낱낱의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는 전방(前方) 툇기둥과 후방(後方) 평기둥 사이에 내고주(內高柱)를 세워
툇보[退樑]와 대들보를 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든 형식으로, 대들보 윗부분에는 높이 30㎝의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마룻보를 받치게 되어 있다.
또 마룻보 윗부분에는 높이 62㎝의 사다리꼴 짧은 기둥을 놓아 마룻대와 함께 옥개석 무게를 지탱하는 1고주(高柱) 5량(樑) 집으로 처마 깊이가
90㎝인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을 이루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향토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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