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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읍 주덕초등학교 송덕비(周德邑 周德初等學校 頌德碑)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주덕읍 주덕초등학교 송덕비(周德邑 周德初等學校 頌德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10. 4. 10:23

 

주덕읍 주덕초등학교 입구좌측 잔디광장에 서있다.

 

 

 

정인시는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이다.

 

정인시는 1883년 정관조의 3남으로 태어났으며, 1945년 1월 화재로 소실된 주덕초등학교 재건축을 위해 아들 4형제와 함께 15개 교실을 건축할 수 있는 비용을 희사하여 지역의 교육 기반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1990년 3월 30일 정인시의 향토 사랑과 교육 사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주덕면민과 졸업생들이 

주덕초등학교 교문 입구에 정공인시송덕비(鄭公寅始頌德碑)를 세웠다.

 

 

김달수는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이다.

 

김달수는 1911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서 가난한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김달수는 어려서부터 배워야겠다는 일념에 독학으로 사범학교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9세였던 1930년 강의공립보통학교 훈도를 시작으로 교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1934년에는 주덕공립보통학교에 평교사로 부임하여 10년간 근무하였다, 부임 초기에는 교실이 없어서 농협창고에서 공부를 했는데, 학부모들이 교육에 무지해 아이들을 학교에 잘 보내지 않아 밤이면 야학을 열어 아동들과 어른들을 가르쳤다. 또한 교사 신축 등 교육 여건 마련에 온 정성을 쏟아 학교의 기틀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1948년 주덕공립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1945년 1월 화재로 소실된 교실을 재건하여 1949년 9월 근대적 학교의 모습을 갖추게 하였다. 1948년부터는 김낙희, 이건학 등과 함께 주덕중학교 설립을 발의 추진하여 1952년 주덕중학교가 개교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46년간의 교직생활 중 26년을 주덕초등학교(현 주덕초등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청백리다운 성품으로 늘 제자들을 사랑으로 가르쳤다. 슬하에 2남 6녀를 두고도 고아 3명을 데려다 키워서 시집보내기도 하였다. 1976년 달천국민학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직 후 전원생활을 즐기다 1988년 78세로 작고하였다.

충청북도 지역의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60년 1월 1일 녹조소성훈장을 받았으며, 1976년 8월 31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1971년 제자들이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주덕초등학교 앞에 김달수 교장 송덕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