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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면 구암리 김양호 진주강씨 쌍정려(南二面 九岩里 金養浩 晉州姜氏 雙旌閭) 본문

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남이면 구암리 김양호 진주강씨 쌍정려(南二面 九岩里 金養浩 晉州姜氏 雙旌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10. 22. 12:51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구암리(九岩里)에 있는 효비각(孝碑閣)으로 김양호(金養浩)와 진주 강씨(晋州姜氏) 부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김양호(金養浩)와 진주 강씨(晋州姜氏) 부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효비각(孝碑閣)으로 1889년(고종 26)에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35년에 중건하고 1989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면을 낮은 담으로 쌓은 뒤 홍살로 막고 안에는 부부의 쌍정문(雙旌門) 편액을 걸었다. 1887년(고종 24)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인 김홍집(金弘集)이 짓고 증손 김지혁(金知爀)이 쓴 정려기(旌閭記)가 걸려 있으며, 밖에는 ‘충효문(忠孝門)’이라 쓴 현판을 달았다.

 

 

 

김양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또한무예에도 출중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여읜 탓에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어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삯바느질을 하며 양호를 길렀다. 그러면서도 양호에게는 자신의 노고를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을에 역병이 돌기시작했고, 양호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 눕게되었다.

그러나 의원을 불러 치료할 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이에 양호는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할고) 어머니를 봉양했다.
양호는 이후 급제하여 청천현감(淸川縣監)이 된다. 그리고 호조참판(戶曹參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등을 거쳐 고종 17년(1879) 타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