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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박물관 문석인(全州博物館 文石人) 본문
조선시대 왕릉이나 사대부 무덤등에 세우는 석인이다
문인석 또는 무인석등으로 구분되며 석인을 세우는 규칙도 있었던 듯 하다.
중국의 진(秦)·한(漢)시대에 비롯하여, 한국에서는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만들었다. 석인에는 문신의 형상을 한 문석인(文石人)과 무신의 형상을 한 무석인(武石人)이 있으며, 줄여서 문석·무석이라고도 한다.
석인은 방향과 시간을 맡아서 능을 보호하는 수면인신상(獸面人身像)인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함께 능묘를 수호하는 조각이다. 석인의 배치는 묘 입구 전면에 석사자(石獅子) 좌우 1쌍, 문석인 좌우 1쌍, 무석인 좌우 1쌍, 다음에 팔각석주(八角石柱)를 세운다.
문인석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형태가 많이 변했으나, 대체적으로 문석인의 형상은 포(袍)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를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이다. 얼굴은 둥글지만 상하로 약간 긴 달걀형이고, 눈은 이른바 행인형(杏仁形)이며, 눈끝은 약간 위로 올라갔다. 큼직한 코 밑에 있는 입술은 가늘고, 힘있게 다문 입 양끝은 아래를 향한다.
코 밑과 턱에 긴 수염을 선각(線刻)으로 나타냈고 턱의 수염은 턱밑으로 뻗어 홀 뒤에 숨었다. 관(冠)의 하부에서 턱 밑까지의 길이와 그 밑 신장의 비율은 1:5~1:3의 변화를 보이며, 이러한 문인석은 특히 문무왕릉(文武王陵)·경덕왕릉(景德王陵) 등 많은 고분이 있는 경주 일대와 조선 고종의 홍릉(洪陵), 순종의 유릉(裕陵) 등 서울 주변의 능에서 볼 수 있다.
무인석
시대에 따라 형태의 변화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그 형상은 갑옷과 투구로 완전 무장하였으며, 얼굴은 크고 둥글다. 두 눈은 매섭거나 문석인보다 더 크게 뜨고 있으며, 문석인과는 달리 수염이 없고 뺨과 턱과 다리의 굴곡이 대담하며, 입은 입술이 두껍고 굳게 다물고 있어 강건한 무사상을 나타낸다.
허리에는 띠[帶]를 두르고 중앙부에는 귀면(鬼面)이 달려 있다. 칼은 칼집에 넣은 채 허리에 차고 있거나, 칼을 뽑아 두 손으로 지팡이처럼 잡고 있는 점이 문석인과 다르다. 무석인은 대부분의 왕릉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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