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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가면 잠병리 인곡사(金加面 岑屛里 仁谷祠)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금가면 잠병리 인곡사(金加面 岑屛里 仁谷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3. 24. 17:46

 

인곡사는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소재하는 조선후기의 사당이다.

새로운 도로명으로는 태고산길 41번지이다.

 

 

 

조선시대에는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다. 인곡사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항복한 것을 비분강개하여 산중에 은거하였던 회헌 한여해(韓如海)를 추모하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청주한씨 종중에서 건립하였다.

 

 

인곡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입구에는 외삼문이 있다.

담은 블록담으로 새로 건축했으며 인곡사 앞마당에는 제사시 제물등을 준비하는 건물을 1동 신축하였다.

 

 

한여해는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호호(浩浩), 호는 회헌(晦軒). 별제(別提) 한극공(韓克恭)의 현손이며 생원 한천뢰(韓天賚)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좌승지 한효중(韓孝仲)이다. 아버지는 전첨(典籤) 한필후(韓必厚)이며, 어머니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이수일(李守一)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로서 숙부인(淑夫人)이다. 동생은 한여두(韓如斗)이다.

한여해는 1633년(인조 1) 27세의 나이로 사마시에 생원과 24인 중 2등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했다. 1637년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적인 강화를 분통해 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호산(湖山)에 은거했다. 1659년(효종 10)에 참봉에 보하고 학행(學行)과 재국(才局)으로 추천하여 위졸(衛卒)·현감·좌랑 등에 임명했으나 나가지 않았다. 늙어서 우로(優老)의 은전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87세로 경기도 여주 집에서 죽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 초당에 있다. 처음에는 여주에 묻혔다가 7년이 지난 후인 1699년(숙종 25) 10월 3일 선영이 있는 충청북도 충주의 북촌 고산대(高山臺) 아래에 있는 묘좌유향(卯坐酉向)의 산으로 이장되었다.

1704년(인조 39) 좌의정 이여(李畬)의 추천으로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정희하(鄭羲河)가 행장(行狀)을 찬술하였으며, 권상하가 묘갈(墓碣)을 찬술하였는데 그 내용이 『한수재집(寒水齋集)』에 전한다. 1958년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잠병리에 있는 인곡사(仁谷祠)에 배향되었다.

 

 

현재 청주한씨 종중에서 매년 한여해에 대한 기제사를 올리고 묘소에 성묘하고 있다.

사당은 1958년에 건립한것으로 추정된다.현재 인곡사는 관리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인조 및 효종 때 청나라에 대한 항복에 울분을 토하며 은거한 한영해를 모신 인곡사는 충절의 고향인 충주시의 역사·문화를 상징할 수 있는 유적지로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