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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신길원현감 충열사(聞慶새재 申吉元縣監 忠烈祠) 본문

전국방방곡곡/문경(聞慶)

문경새재 신길원현감 충열사(聞慶새재 申吉元縣監 忠烈祠)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11. 13. 12:27

 

계절은 만추다.

11월의 문경새재는 가을의 절정기를 넘어선 조금은 스산한 날씨였다

충렬사는 문경새재의 1관문인 주흘문을 지나 새재길이 아닌 헤국사 가는 길인 곡추이골 입구에 있는 신길원 현감의 사당이다.

 

 

신길원 현감이 문경에 부임한지 2년인 임진년에 왜적은 병력 15만을 이끌고 동래와 부산으로 들이닥쳐 침략하기 시작했다

아군은 수도 적고 적의 조총이라는 신무기앞에 무력할수 밖에 없었다.

신길원현감이 문경을 지키고자 할때 왜구와의 싸움에 승산이 없음을 인지한 관원들이 몸을 피하기를 원하자

 

"나는 이나라의 신하다"

 

"내가 몸바쳐 지킬곳은 이곳이다" 하며 몸을 피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문경에 들이닥친 왜구들이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자 오른손에 관인을 잡고 찍기를 거부하자

오른손을 칼로 내려치니 이번에는 왼손으로 관인을 잡고 찍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왼팔마저 칼로 베임을 당하니

관인을 입으로 물고 저항하여 목마저 베임을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죽음이 조정에 알려지자 신현감의 죽음을 칭송하여 좌승지로 추증하고 충절비를 세웠다.

 

 

신길원 충렬비는 1981년 4월 2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문경 현감으로 있던 신길원은 일본군이 공격해 오자 관군을 거느리고 끝까지 싸웠으나 부상을 입고 순국하였다. 사후에 좌승지로 추증되었으며 그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706년(숙종 32) 충렬비를 세웠다.

표충사()에 배향하였고, 문경 향교 앞에는 충렬사를 건립하여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충렬비는 원래 문경의 비석 거리에 세워져 있었다고 전하나, 문경읍 상리 문경초등학교 교문 옆에 충렬각을 세우고 그 안에 보관되어 오다가 비각은 허물어지고 비석만 남아 있었다. 1976년 10월 문경군(지금의 문경시)에서 문경 제1관문(주흘관) 뒤에 비각을 건립하고, 비석을 옮겨 세웠다.

이 비는 화강석으로 비부 높이 77㎝, 세로 86㎝, 비신 높이 190㎝, 너비 89㎝, 두께 27㎝이며 비개는 높이 77㎝, 가로 122㎝, 세로 63㎝이다. 1981년 비석을 다시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고 보호각을 세우고 국역비를 다시 세웠다.[네이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