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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성황당 본문

전국방방곡곡/문경(聞慶)

문경새재 성황당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11. 15. 13:02

 

문경새재에는 성황당이 2곳이 있다.

1관문인 주흘문을 접어들면서 우측으로 있는 성황당이다

성황당에는 또 한쪽에 산신각도 자리하고 있다..

 

 

일관문인 주흘문에 있는 성황당은 여신을 모시고 있는 성황당이다

이 성황당에는 여신과 조산시대의 명신인 최명길과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새재 제1관문 안에 있는 새재성황당은 건립연대나 누구의 손에 의해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중수를 했다고 기록이 보인다.

이 성황당 신에는 병자호란 때 화의파의 주장인 지천 최명길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최명길이 약관일 때에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을 찾아가는 길에 새재를 넘게 되었다.구절양장 같은 험한 산길을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소복단장을 한 아름다운 여인이 따라 오는 게 보였다. 여자의 걸음걸이가 빨라 잠깐 동안에 자신을 앞질러 가는 것을 보고 이를 무엄하게 생각한 최명길이 걸음을 재촉하여 여인의 뒤를 쫓아가도 걸음의 속도가 일정하여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기고 더 한층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여인이 비명을 지르기에 달려가 보니 여인이 발을 헛딛고 비탈에 구르고 있는지라, 급히 달려가 여인을 부축해 구해 주었다.

이런 사연으로 동행케 되어 그 여자에 대해 하나하나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여인은 한참 최명길을 쳐다보더니 말하기를 “나는 새재성황신인데 며칠 전에 이 새재를 자주 왕래하는 대상(大商)이 중국비단 치마 저고리 일습을 나에게 바치고 갔는데 어제 안동사는 좌수가 성황당 앞을 지나다가 가자고 가서 자기 딸에게 입혔기에 내가 그 옷을 찾고 그의 딸을 죽일심산으로 안동으로 간다”고 했다. 최명길은 속으로 깜짝 놀랐으나 겉으로 태연자약하게 “소행은 괘씸하지만 사람을 함부로 해하면 천리(天理)가 아니라”고 하면서 조처를 잘하라고 부탁했다. 최명길이 안동에 도착하여 부사인 외숙에게 문안을 드리고 모좌수(某座首)의 집을 물으니 어느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함에 급히 달려가보니 좌수집에서는 아침까지도 건강하던 딸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여 곡소리가 낭자하였다. 주인을 찾아 수인사(修人事) 후에 내가 댁의 따님을 살릴 수가 있으니 좀보자고 하니 주인이 쾌히 승낙하므로 처녀방에 가보니까 새재 성황당신이 좌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최명길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좌수의 딸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주인이 백배사례한 것은 물론이고 신의(神醫)로 우러러 보면서 몸둘 바를 몰라하였다.

  서울로 돌아 가는 길에 새재성황당을 지나면서 보니 성황당신이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라, 또 어디를 가려고 준비를 하느냐고 물으니 성황신의 말이 “지금 천자(天子)가 만주에서 탄생하여 상제(上帝)께서  천하제신(天下諸神)에게 명하여 천자를 호위하라는 명을 받고 만주로 가려는 참이었는데 때마침 잘 만났다”고 하면서 “당신은 뒷날 큰 벼슬을 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될 것이니 그때에 천자가 우리 나라를 쳐들어 오면 백성을 살리고 종묘사직을 보전하는데 앞장서야 하며 그 길은 화의(和議)의 길밖에 없으니 명심하라”고 당부하고 사라져 버렸다. 뒷날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농성할 때 척화파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화의를 성립시켰다.

최명길의 관은 전주요, 호는 지천이며 인조 정사원훈으로 완성부원군 영의정이 되었었다.

 

 

 

 

 

제 3관문옆에 자리한 산신각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조 태종 때에 있었던 일이라고 전해오는 전설인데, 어명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물의 세계에서도 거역치 못하는가 보다. 태종 임금은 처음으로 문경에 현감을 두고 새재길을 개척하였었는데 그 때에 문경현감이 급히 조정에 상주하여야 할 일이 있어 발빠른 역졸을 골라 연풍까지 가서 문서를 전하고 오도록 명령했다. 역졸은 새재를 넘다가 중간지점에서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현감은 조정에서 비답이 오기만을 학수고대 하던 중에 조정에서 독촉하는 공문이 다시 왔기에 역졸을 찾아보니 공문서를 갖고간 후 종무소식이라는 것이다. 당황한 현감은 많은 사람을 풀어 새재길을 뒤진 결과 호환을 당한 역졸의 시신 일부를 찾게 되었다.

  현감은 하는 수 없이 이와 같은 전후 사실을 조정에 상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 임금은 대노하여 미물의 짐승이 감히 나의 적자를 해할 수 있단 말이냐? 당장 사신을 보내서 조령산의 호랑이를 잡아와서 치죄받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엄명을 받은 금부도사는 길을 재촉하여 새재에 당도하여 호랑이를 잡으려 백방으로 노력을 하였으나 잡을 길이 없으므로 궁여지책으로 정성스럽게 제수를 올리면서 어명을 전하였다. 그 날 밤중이었다. 온 산천이 떠나갈 듯한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두 세 번 들리더니 다시 잠잠해지기에 이상하게 생각한 금부도사는 주흘산사에 가보았더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금부도사는 죽어가는 호랑이 등에 어명을 붙였더니 호랑이는 금방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부도사는 죽은 호랑이의 호피를 가지고 돌아가서 태종에게 전후 사실을 복명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부터는 새재길에는 호환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해가 지난 뒤에 문경에 사는 전씨성을 가진 이인(異人)이 있었는데 그의 꿈에 새재 산신령이 현몽하기를 “나는 주흘산신령인데 나라에 득죄하여 아직도 그 죄를 벗지 못했으니 조정에 상소하여 나의 죄를 벗도록 해달라”고 간청하더란다. 전노인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조령산신령의 신원상소를 올렸다. 태종이 이 상소를 보고 새재산신의 죄를 사한다는 비담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