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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의 신도비(韓蘭의 神道碑) 본문
[금석문]
묘소 앞의 신도비는 후손인 한익모(韓翼慕)가 찬하고 한광회(韓光會)가 비문을 썼으며 한덕필(韓德弼)이 전액을 써서 1768년(영조 44)에 세워졌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실린 그 비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우리 동방의 대성에는 반드시 한씨를 칭하게 되는데 기자(箕子)가 동쪽으로 와서 후손으로 성을 얻은 자가 셋인데 한씨가 그 하나이다. 그 후 수백 년을 지나 우리 태위부군에 이르러 비로소 호서의 청주에 일가를 이루어 모든 한씨의 조상이 되니 대개 보고 들은 바로 자연히 알 수 있다.
부원군 한란은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 공훈으로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다. 청주 동남쪽 10리에 있는 방정리(方井里)는 당시에 복거하신 구지이다. 방정리에서 가산 아래 남록 남쪽 67리에 있는 묘지는 부감(負坎)의 언덕으로 실로 부원군의 옷과 신발이 묻힌 곳이다. 중간에 실전이 되어서 타인들이 모점(冒点)하여 봉분의 형태가 없어지고 묘역을 찾을 길이 없었다.
1605년 후손 한백겸(韓百謙)이 청주목사로 와서 방정리 유허지에 단을 축조하고 해마다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 1689년에 참판 성우(聖佑), 장령 영(濚), 군수 숙(塾)이 같이 나서서 관청에 제송하니 조정에서 경조를 파견하여 사중을 파본 즉 부장품 등 확실한 증거물이 나오므로 범인이 사실을 자백하였다.
이제야 투장한 것을 파서 옮기고 여러 자손들이 나가서 봉분을 쌓고 묘역을 깨끗이 정리하였다. 이것이 부군 묘소를 잃었다 찾은 내력이다. 이에 모든 종중이 서로 재물을 거두고 돌을 다듬어서 묘 옆에 세우고 이런 사실을 기록하니 부군의 후손되는 사람들은 이것을 거울삼아 근본에 보답하는 도와 선조의 적덕의 보은을 알지어다.
여러 일가가 돌을 깎아 다듬어서 8척으로 하여 글을 새겨 영원토록 후손에게 밝히노라.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정 세손전 익건(翼謇)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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