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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한란의 묘(韓蘭의 墓)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한란의 묘(韓蘭의 墓)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4. 10. 15:08

 

 

 

 

 

 

 

 

 

 

 

 

 

 

 

 

 

 

 

 

 [정의]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 있는 한씨의 시조인 한란의 묘소.

[개설]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대표적인 씨족 중의 하나이며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韓蘭, 853~916)청주지역의 대표적 호족으로 왕건(王建)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중대광태위(三重大匡太尉)에 봉해지고 개국공신이 된 인물이다.

[위치]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 산 18번지에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 72호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변천]
원래의 묘소는 1659년(효종 10)에 훼손되어 후손들이 1690년(숙종 16)에 봉분을 복원하였다고 전해진다. 묘소는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되었지만 고려시대의 묘비와 상석 등이 현존하고 효종 때의 문인석과 용마석이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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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한씨에 대하여

청주한씨 (淸州韓氏)의 시조는 한난(韓蘭)인데, 기자(箕子)의 후예로 상당(上黨) 한씨(韓氏)를 습성(襲姓)하였다는 우량(友諒)의 32세손으로 전한다.
[청주한씨족보에 의하면 난(蘭)은 서기 928년 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할 때 장검을 들고 함께 출정하여 삼한 통합에 공을세워 개국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태위에 올랐으며, 청주 방정리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은 청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한씨는 문헌에 131본으로 나타나 있다.
한씨는 중국 송나라 팔학사의 한사람으로 고려 희종2년에 우리나라에 귀화한 한예를 시조로하는 곡산 한씨와 기자의 후예로 알려진 청주 한씨 로 구분할 수 있다.

성씨(姓氏). 한씨는 한국의 최고(最古)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본관은 오늘날 한씨 거의가 청주(淸州) 단본을 내세우고 있는데, 문헌에는 청주 외에 평산(平山) · 한양 (漢陽) · 안변 (安邊) · 양주 (楊州) · 곡산 (谷山) · 홍산 (鴻山) · 대흥 (大興) · 부안 (扶安) · 개성 (開城) · 함흥 (咸興) · 금산 (錦山) · 단주 (湍州)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분적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후대에 우성(友誠) · 우평 (友平) · 우량 (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 · 선우씨 (鮮于氏) · 한씨 (韓氏)가 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량의 원손(遠孫)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종래 ‘ 기씨조선 (箕氏朝鮮) ' 으로 알려졌던 고조선사회는 실상 ‘ 한씨조선 ' 이고 , 준왕은 ‘ 기준 (箕準) ' 이 아니라 ‘ 한준 (韓準) ' 이며 , 따라서 한씨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청주한씨는 특히 고려와 조선 전반기에 크게 세력을 떨쳤으며 , 왕실을 배경으로 한 권력의 중심에서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에 한씨의 입김이 닿지 않는 예가 드물 정도였다
이러한 가문을 더욱 빛나게 한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난(蘭)의 7세손 강(康)이 고려 고종때 감찰어사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충렬왕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다녀와 [고금록(古今錄)]을 저술했으며 첨의중찬으로 치사(致仕)하였다.

밀직사 영(英)의 아들 종유(宗愈)는 충혜왕때 첨의평리로서 일등공신에 녹훈되어 한양군에 봉해졌고, 충목왕때 좌정승에 올랐다. 이어 1349년 한양부원군에 진봉되어 치사 하였고, 공민왕때 서연관(書筵官)이 되어 왕의 지극한 대우를 받았다. 시문에도 뛰어나 명사들과 함께 술에 취하면 [양화사(楊花辭)]를 읊었으므로 [양화도(楊花徒)]라 불리웠다.
간의대부 사기(謝奇)의 아들 악(渥)은 우정승으로 상당부원군에 봉해져서 지도첨의사사 대순(大淳), 정당문학 중례(仲禮), 첨의평리 방신(方信) 등 일곱 아들과 함께 당대에 뛰어났다.
한편 충목왕때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수(修)는 밀직부사 공의(公義)의 아들로 우왕이 즉위하자 밀직제학, 동지밀직을 거쳐 상당군에 봉해졌으며, 수충찬화공신으로 청성군에 개봉되어 판후덕부사에 이르렀다.

조선조에 와서는 수의 아들 상환(尙桓), 상질(尙質), 상경(尙敬), 상덕(尙德) 4형제가 모두 뛰어나 명문의 청주한씨를 더욱 빛냈다.
그중 예문춘추관 대학사를 지낸 차남 상질(尙質)은 조선이 개국되자 주문사로 명나라에 들어가 국호를 조선으로 결정받고 돌아온 인물이다.
그리고 셋째 상경(尙敬)은 여러 벼슬을 거쳐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삼등공신에 책록되어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정종때는 각 도의 관찰사와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태종때는 서원부원군에 봉해져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청주한씨를 명문세족의 반석위에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회(明澮)는 영의정 상질의 손자이자 감찰 기(起)의 아들이다.
그는 말직인 경덕궁직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계유정난에 공을세워 정난일등공신에 올랐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승지에 승진, 이해 가을 좌익일등공신으로 우승지가 되었다. 2년 뒤인 1457년 이조판서에 올라 상당군에 봉해졌고 이어 영의정에 이르러 신숙주 등과 함께 [신제대전(新制大典)]의 초안을 완성했다.

그의 슬하에는 성종때 좌리공신에 책록된 아들 보(堡)와 딸 넷이 있었다
맏딸은 세종의 부마(駙馬)인 윤사로의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딸은 영의정 신숙주의 맏아들에게 출가했으며, 셋째 딸은 예종의 비(妃), 넷째 딸은 성종의 비(妃)가 되었다.

한편 학문과 인품으로 세조의 아낌을 받아 덕종의 스승이 되었던 계희(繼禧)는 관찰사 혜(惠)의 아들로서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삼등공신으로 서평군에 봉해졌다. 그의 아우 계순(繼純)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좌의정 확(確)의 딸은 덕종의 비(妃)가 되었으며, 아들 치인(致仁), 치의(致義), 치레(致禮) 3형제가 모두 뛰어났다. 광해군때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오른 효순(孝純)과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여해(如海), 부원군에 진봉되고 우의정을 지낸 응인(應寅) 등은 가문을 한층 더 중흥시킨 인물들이다.
특히 동방 제일의 명필로 일컬어진 호(濩)는 인조때의 학자 교(橋)와 더불어 학명을 날렸다.
석봉(石峯) 호(濩)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어머니의 격려로 서예에 정진하여 중국의 서체와 서풍을 모방하던 풍조를 벗어나 독창적인 경지를 확립하여 석봉류(石峯流)의 호쾌, 강건한 서풍을 창시했으며,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계의 쌍벽을 이루어 동양의 명필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효종때 우의정을 역임한 흥일(興一)과 숙종때 대사헌 세량(世良), 순조때 영의정 용구(用龜), 고종때 우의정 계원(啓源) 등이 명망높은 청주한씨를 더욱 빛냈다.
한말의 의병장 봉수(鳳洙)와 상렬(相烈)은 독립운동에 몸바친 대홍(大弘), 상호(相浩), 우종(禹宗), 필호(弼昊), 훈(焄), 흥(興), 흥근(興根) 등과 함께 충렬로서 명문의 대를 이었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萬海) 용운(龍雲)은 3 · 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으로 불교의 대중화와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에 힘썼고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시조 한란은 우경의 31세손인 한지원에게 한만, 한간, 한란, 한영 네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셋째 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주 한씨에서 5세손 한후저는 평산 한씨,
6세 한원서는 한양한씨,
8세손 한란경은 양주한씨,
9세손 한연은 안변한씨,
9세손 한자희는 면천한씨,
9세손 희유는 가주한씨,
10세손 한공서는 당진한씨,
10세손 한이는 부안한씨,
11세손 한유충은 대흥한씨,
14세손 한진은 보안한씨,
15세손 한돈은 금산한씨로 되었으며,
9세손 한악의 후손인 한승정은 서원한씨,
9세손 세영의 후손 중 한규지는 장단한씨, 한익지는 함흥한씨, 한혁지는 교하한씨, 시조인 한란의 후손 한총례는 단주한씨로 각각 분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란의 아버지 우경의 후손으로 전하나 확실한 계대를 알 수없는 한우신(신평한씨), 한세찬(탐진한씨), 한종희(대구한씨), 한예(곡산한씨), 한세침(보령한씨) 등을 1세 조상으로 하는 계통이 있으나 같은 조상의 자손이라며 대부분 합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