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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동 충노수철지비(守儀洞 忠奴水鐵之碑) 본문

통합청주시/흥덕구(興德區)

수의동 충노수철지비(守儀洞 忠奴水鐵之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12. 21. 11:38

 

흥덕구 수의동 도장골에 위치한 조선의사 박우현의 묘 밑에는 작은 비가 하나 더 있다.

충노수철지비(忠奴水鐵之碑)라고 음각되여 있으며 월두형의 작은 비석이다.

 

 

이 비석은 박우현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와 청주성을 점령하고 있을때 박우현의 노비로 있던 수철도 8월1일 청주성을 탈환하기 위하여 박우현과 함께 열심히 전투를 하다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주인과 함께 주인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친 수철의 주인 향한 충심을 기리고자 세운것으로 추측이 된다.

 

 

묘소 바로 아래에는 “忠奴水鐵之碑”(충노수철지비)가 있다. 높이 93㎝, 폭 34㎝, 두께 10㎝의 묘갈형 오석 화강암 비석으로, 뒷면에는 “月午門宗一同戊辰十日月日刻字 朴南圭”(월오문종일동무진시월일각자박남규)라고 새겼다.


 

 

 

 

충노 수철의 주인인 박우현은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 100여 명을 모집하여 1592년 8월1일 청주성 탈환전에 참가하여 북문 밖에서 교전중에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충북에는 주인을 향한 노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 양지리에도 일기 자리하고 있다

양지리에 있는 충비삼월의 비는 현재 충북 문화재 자료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양지리에 위치하고 있는 충비삼월의 비는 충성스러운 노비였던 삼월의 공을 기리고 있는 비로, 규모는 작지만 상태가 좋은 편이다.

 

4각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얹은 모습이며, 앞면에 비의 명칭을 새기고, 뒷면에 삼월의 공적을 적어 놓았다. 비문에 의하면 삼월은 청풍 김씨 집안의 여종으로 주인의 맏아들인 김윤이 태어난지 3일만에 그 어머니가 죽자 젖을 먹여 키웠다. 김윤이 성장하여 결혼했으나 아이를 남긴 채 그 마저 죽자, 그 아들을 정성껏 키워 주었다. 후에 이 아들이 높은 벼슬에 올라 가문이 번창하니, 그 공을 모두 삼월에게 돌리고 있다.

 

삼월에 대한 고마움에 답하고자 조선 정조 20년(1796) 김윤의 후손들이 이 비를 세웠으며, 비문은 정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종수가 짓고, 글씨는 김치희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