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미원면 미원리 쌀안유래비(米院面 米院里 쌀안由來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미원면 미원리 쌀안유래비(米院面 米院里 쌀안由來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2. 25. 08:42

 

미원면사무소내에 자리하고 있는 쌀안(米院)의 유래비입니다.

2003년 5월에 조성하였으며 지명에서 유래한 미원쌀안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미원리는 미원면의 소재지로서 동은 쌍이리, 서는 낭성면 귀래리, 남은 성대리, 북은 내산리에 접해 있으며 가구수가 644호에 인구가 2,262명에 이르는 큰 마을이다. 미원리는 속칭 산안, 쌀안, 쌀원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본래 청주군 山內一面의 지역으로서 상당산 안쪽이 되므로 산안이라 하였다가 발음이 변하여 쌀안이 되었으며 조선때 栗峯驛에 딸린 米院이 있었으므로 쌀원 또는 米院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藥溪里, 藥圃里, 華谷里와 松亭里, 玉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미원리라 하였다.

마을 중심에 미원천이 흐르고 시장이 형성되어 5일장이 서고 있으며 미원 중심가에는 상설점포와 음식점, 상업시설이 많으며 마을 주변의 들판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 벼농사를 위주로 경작하고 있으며 이밖에 담배, 고추, 인삼, 시설채소 등을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미원에는 南陽洪氏가 집성촌을 이룬 가운데 약물내기 옆에 洪錫武 및 洪胃華 부부의 忠孝閣과 洪錫武 事蹟碑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 가뭄이 겹쳐 흉년이 계속되어 온 나라의 백성들은 초근, 목피로 매일을 연명해 갔다. 이 때 경주 분황사에서 황해도 부월산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노승이 있었다.

노스님은 경상도부터 탁발을 해왔으나 한끼를 제대로 공양받지 못했으므로 급기야 허기에 지쳐 어느집 문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입속으로 흘러드는 미음의 부드러운 감촉에 눈을 떴다.

스님이 주인에게 “어찌된 일인데 소승이 이런 고마운 대접을 받고 있습니까?” 하며 송구스러워하니 주인이 “스님께서는 이틀 전 저희 집 앞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래서 방에 모셨는데 이제 정신이 드시는 것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하며 사연을 말하니 소승은 은공에 감사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에 인자한 주인은 스님의 몸이 완쾌하시거든 떠나시라 하니 스님은 극구 사양하며 떠나려하자 “주인이 스님께 편히 모시지 못하오니 공양할 양도는 있으니 편히 쉬시라는 말에 도대체 이곳이 어느 고을이기에 식량 걱정을 하지 않습니까?” 하며 주인에게 물으니 “이곳은 아직 이름도 없는 고을로 장마나 가뭄이 없어 흉년을 모르고 산다” 는 말에 놀란 스님은 밖으로 나와 산천을 둘러보니 초목이 울창하였고 들에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스님을 며칠을 기거한 후 구원해 준 은공에 감사하고 건강한 몸으로 길을 떠났다. 스님은 가는 도중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청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중간쯤에 부처님이 돌보시는 쌀 고을이 있으니 가서 도움을 받도록 하라” 하며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 도움을 받고 또한 한양 가는 과객들까지도 도움을 받았다.

이때부터 충청도가 인심이 좋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며 쌀 고을이라 해서 ‘쌀안(미원)’이라고 부르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