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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면 행촌리 경석조공적비(延豊面 杏村里 慶錫祚功績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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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면 행촌리 경석조공적비(延豊面 杏村里 慶錫祚功績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1. 20. 23:12

 

경석조 공적비는 연풍면 행촌리 연풍향교옆 공적비가 있는 공적비군 공원옆에 자리하고 있다.

비석에는 애국의사경석조공공적비(愛國義士慶錫祚公功績碑)라고 적혀있다.


 

경석조(慶錫祚)는 1881(고종 18)∼1957 독립운동가이다. 연풍면 유하리(柳下里)에서 1881년 6월 27일 태어났다. 호는 혜춘(惠春), 이명(異名)은 양조(陽祚)이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채기중(蔡基中), 김상진(金尙鎭) 등과 함께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 구금되었다. 1919년 3·1 독립 만세운동 때에는 충북의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만세운동을 이끌었으며 ‘대동단’(大同團) 충북 지단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1921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밀 지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하여 비밀리에 활동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된 바 있다. 1924년 4월 다시 만주 길림성으로 이동, 이범석(李範錫), 이청천(李靑天), 김좌진(金佐鎭)등과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또 북간도(北間島) 용정촌(龍井村)에서 ‘고사연구회’(古事硏究會)를 조직하고 독립을 위한 사상적, 학문적 연구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중국 국민당에 입당, 만주에 있는 동포들을 규합하고 이들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29년에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요인 이청천(李靑天), 류동열(柳東悅), 이범석(李範錫), 홍진(洪震) 등과 ‘한족지하연합회’를 결성, 총무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의 기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 1949년 2월에는 반민특위(反民特委) 충북책임자로 선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57년 4월 4일 타계했다.정부는 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국외용의조선인명부(조선총독부) 『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