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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 동부리 홍범식추모비(槐山邑 東部里 洪範植追慕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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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 동부리 홍범식추모비(槐山邑 東部里 洪範植追慕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5. 11. 20. 16:40

 

충북 민속문화재 제 14호로 지정되여 관리중인 홍범식고가 옆에 자리하고 있는 홍범식의 추모비이다.


 

추모비에는 의사홍공범식추모비(義士洪公範植追慕碑)라고 적혀있으며 홍범식의 생전의 기록이 적혀있다.


 

홍범식(洪範植) 1871(고종 8)∼1910,이다


대한제국기 관료이다. 괴산면 인산리 출신으로 1871년 7월23일에 출생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방(聖訪), 호는 일완(㊀玩)이다. 소설 『임꺽정』을 지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부친 홍승목(洪承穆)은 1875년 별시 문과 급제 후 이조참의, 병조참
판, 궁내부 특진관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을 배우는 등 명1888년(고종 25) 진사시에 합격하여 1902년(광무6)에 내부 주사(主事), 혜민서 참서(參書)를 역임하고, 1906년에는 덕릉(德陵) 등의 비각을 짓고 표석을 세울 때 감독한 관리로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1907년에는 전라북도 태인 군수, 1909년에는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지방행정에 힘썼다. 군수역임 중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봉기한 의병들의 보호에 힘써 일본군의 체포망을 피하게 하였고, 일본군을 설득하여 백성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힘썼다.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전하며, 감동한 군민들이 세운 마을의 송덕비가 38개에 이르렀다 한다. 정주시 산외면 오공리에는 현재에도 ‘군수 홍범식 애민선정비’가 남아있다. 1909년에는 금산군수로 부임하였고, 이곳에서도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다고전한다. 금산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의 조인 소식을 듣고는, “내가 이미 사방 백리의 땅을 지키는 몸이면서도 힘이 없어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니 속히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탄식하였다. 1910년 8월 29일 드디어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객사 뒤뜰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나라가 망했으니 나는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묘소는 괴산읍 제월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