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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면 동림리 조천상효자각(玉山面 東林里 曺天祥孝子閣) 본문
옥산면 동림리(東林里)에 조천상(曺天祥)의 효자문이 있다.
천상은 조선 중기 때의 인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극진하였다.
어느 날 마을에 도적이 침입했다. 아버지가 도적의 칼에 해를 당하게 되자 몸으로 막으며,“아버지 대신 저를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도적은 잔인하게도 어린 천상의 두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천상은 그 후에도 부모를 극진히 섬겼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었다.
이번에는 손가락 하나를 잘라 어머니의 입에 넣었다. 어머니는 피를 마시더니 얼마 후소생하였다.
아버지가 울면서,“저번에는 애비를 위하여 도적에게 두 손가락이 잘리더니 이번에는 어미 때문에 또손가락이 끊어졌구나.
부모로 하여 너는 몸둥이만 남는구나!”하며 애통해 했다.
천상은 부모의 상에 반드시 예제(禮制)를 따르고 삼 년간 여막을 짓고 시묘하였다.
그리고 정성껏 묘소를 지켜 마을 사람들을 감동케 하였다.
이 같은 사실이 후에 나라에 알려지고 인조 때 천상의 후손들이 사는 동림리에 정문이 내려졌다.
향토유적 자료 5호지정 되여있다.
위치는 옥산면 동림리 316번지이다
이 효자각은 숙종2년(1676년) 조천상의 효행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효자각은 1972년에 중수하고 1983년에 보수하였고 2002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부분의 효자각에서 기술되듯이 효성이 극진하여 병환중인 자친을 위해 자신의 피를 흘려 낫게 하였고
변을 맛보며 정성껏 구호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또한 철이 아닐때에 산나물들 구하고 고기가 얼음속에서 튀여 올라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보면 현실의 감각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효를 강조하며 지극했던 조천상의 효행을 알리고자 하는 뜻이 아닐까 한다
주변정리로 꽃나무도 심었고 깨끗히 잘정리되여 있다
이 효자각은 조선 숙종 2년(1676)에 창녕인(昌寧人) 조천상(曺天祥, 1568~1635)의 효행을 기리어 나라에서 세운 정려이다.
지금의 효자각은 1972년에 중수하고 1988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1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정려의 사면은 홍살로 막고 안에 효자문 편액을 걸었으며, "정려서문(旌閭序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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