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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재오개리(乷味面 才五介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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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재오개리(乷味面 才五介里)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 26. 13:56

 

 

 

재오개는 살미면 법정리동의 하나로, 본래 충주군 살미면 지역으로 다섯 개의 고개 밑에 있으므로 재오개(才五介)라 하였는데, 옛날 경주이씨(慶州?氏) 2가구가 상경하다가 산수가 좋아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선동(道仙洞), 동막동(東幕洞)을 병합하여 재오개라 하였는데 조선시대의 여지류(輿誌類)엔 재옥애(裁玉崖)로 표기되어 왔다. 1937년 법정리동을 자연마을 단위로 분구할 때 상재오개, 하재오개, 도선동, 동막동으로분리되었다. 동쪽은 매내미재를 넘어 신매리와 접하고, 서쪽은 발티 능선을 경계로 발티골과 접하며, 남쪽은 설운리와 접하며, 북쪽은 하느골 재를 넘어 목벌동과 접하고 있다.
재오개는 과거 한수면 쪽에서 충주로 넘어오는 주요 교통로상의 마을로, 재오개와 충주의 직동(直洞) 사이에 있는 발티(發峙)의 아랫마을이 된다. 이곳은 충주와 청풍방면의 각 마을들을 잇는 최단거리였으나 1929년 충주-단양을 잇는도로가 개설되고 차량의 이용이 커지면서 점차 교통로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마을이 오지로 남게 되었다.

 

 

 

 

 

 

 

이 마을의 명칭이 재오개(才五介)로 된 전설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이 마을엔왕기(王氣)를 타고난 아이가 있었는데다섯 살이 되어 이미 문무를 겸비했다
고 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두려워하여군사를 보내 금봉산 줄기와 재오개 고개의 혈을 끊었고, 이로 인해 아기장수는 죽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마을 이름을 재오개(才五介)라 불렀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1985년에 완공된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인하여 하재오개와 흑석을 중심으로 수몰민이 발생하였다. 수몰당시에는 65가구, 239명이 거주하며 대부분 논농사를 주로하며 고추와 담배를 특용작물로 재배하였는데 현재는 38가구 90명의 주민이 밭농사 위주로고추와 사과를 특용작물로 재배하고 있다.

 

 

 

 

 

 

 

2001년 2월에 MBC 드라마 촬영세트장이 건립되어 홍국영, 상도등 드라마를 촬영하였고 촬영장을찾는 관광객도 점차 늘어나고 있었으나,

최근 화재로 소실되었다.
재오개에는 발티에 터널을 뚫어충주댐의 물을 충주시 직동을 거쳐 충주시내로 끌어가는 대규모 재오개지구 용수개발사업이 한창이다.
이 사업은 4.3km 길이의 도수터널을 뚫어 충주댐의 맑은 물을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주요 시설로는 물을 끌어올리는 980m의 인수로와 4,384m의 도수터널, 관주골·호암지·마즈막재 등 3개 방향으로 공급하는 8,000m의 용수로, 취수탑 1조, 양수장 1개소가 각각 설치되며 687ha의 한해 상습지역이 수혜를 받게 된다. 또한 이 사업이
완료되면 호암지로 맑은 물이 들어가 호암·단월·달천·봉방·교현·안림동 일대의 농경지에 깨끗한 용수를 상시 공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부는 도심지를 관통하는 충주천과 교현천으로 흘려보내 쾌적한 도시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몰 이후 재오개 사람들은 의향(意鄕)친목계를 만들어 1년에 세 번(음력 2월1일, 약력 8월 15일, 약력 12월 25일) 모임을 갖고 25명의 회원이 고향을 생각하며 친목을 다져왔다. 그러다 2005년 12월 25일 의향친목계를 파계하고 충주, 재오개에 거주하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연방계로 전환하여 운영하고 있다.
재오개리의 대동계는 수몰 전에는 많을 때는 100여 호의 주민이 거주하며 자연부락 단위로 운영하였는데 수몰 후에는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개최 일자는 정해져 있지는 않으나 매년 12월 중에 협의하여 마을회관에 모여 개최하며 이장이 주관하였으나,

2005년부터 대동계장을 선출하여 대동계장이 주관한다.
대동계에서는 이장 선출을 포함한 마을의 대소사를 협의 결정하는데 재오개에 거주하는 세대주는 모두 대동계원이 된다. 새로 전입되는 사람에게도 입회금은 받지 않고 있다. 대동계의 기금은 별로 없으며, 다만 1년에 호당 쌀 1말씩을 거출하여 이장에게 마을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례로 지급하고 있다.

 


 

 

 

 

 

재오개리의 마을 행사의 하나인 동제는 정월 보름과 칠월 보름 경에 적당한날을 선정하여 1년에 두 차례 동제를 지낸다. 제를 올리는 순서는 강신 잔을 올린 후에 재배하고 축을 읽는다. 대동소지는 없고 세대주와 자손들 까지도 소지를 올리며 가정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동제 다음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고향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재오개는 마을 이름도 되고 고개 이름도 된다. 재오개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내려오고있다.
어느 날 재고개 밑을 지나가던 늙은 선비 한 사람이 외딴집을 보고 찾아가 냉수 한 그릇을 청했다. 아낙네가 나와 물을 떠 주었는데 그 부인이 잉태하고 있었으므로 선비는 산월을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집을 떠나면서 이르기를「아기를 낳게 되면 재고개의 정기와 금봉산의 기를 받아 범상치 않은 인물이태어날 것이니 아무쪼록 조심해서 기르시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노 선비는 고갯마루에 서더니 다시 한번 주변 산천을 살피고 나서 길게 한숨을 내 쉬며 혼잣말을 했다.「 애석한지고 그 기운에 요절(妖折)기가 있단 말이야??」그런지 얼마 후에 그 부인이 몸을 풀었는데 재고개 에서부터 산실까지 무지개가 이어졌다. 그런데 보통 무지개 색은 7색으로 검은색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그 무지개의 한 가운데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아기는 나면서부터 비범했다. 석 달 만에 말을 하고 세살짜리가 쌀 한 짝을 들뿐 아니라 재주도 비상해서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았다. 그러자 이런 소문이 그인근뿐만 아니라 멀리에 까지 퍼져 가족이나 동리에서 장한아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이것이 관가에까지 알려져 조정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이 충주를 살피고 간 후에 충주 땅에 왕의 기운이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하고 재오개 땅에서 비상한 인물이 크고 있으니 재오개에다 혈을 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명을 내려 철장대를 지르기에 이르렀는데 그 때 그 철장대를 지르던 사람은 피를 토하며 죽었고, 산천초목이 시들더니 기어코 그 장사 아이도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 장군대좌에 혈을 질렀다는 전설이 있는 할미골 입구에는 붉은 물이 흘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불그스름한 물이 나오고 있다.
이 장사 아이가 죽을 때「내가 죽거든 나를 꼭 이 마을 동구에다 묻어 주세요」하고 유언을 했으므로 그에 따라 동구에다 묻었는데 그날부터 이 재오개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바람이 불면 슬프고 원한에 찬 소리가 바람을 타고 원근에 퍼지므로 지방민이 모두 애통해 했다고 한다. 이 소리는 아기장사가 요절한 원한의 소리라고 해서 모두 모여 제단을 만들고 동제를 지내주었더니 그 후로 그소리가 멎었다고 한다.
그 다음해 이 아기장수를 묻었던 곳에서 한그루 느티나무가 싹이 트더니 무럭무럭 자랐다. 그 후 동민들은 이 나무에도 동제를 지내주고 있는데 잎이 잘돋고 못 돋고 하는 상황에 따라 해마다 풍작과 흉작을 점치고 있다는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재주 있는 아기장사가 다섯 살 때 죽었다는 뜻으로「재오개(才五介)」라고 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12대에 걸쳐 이 마을에 거주해 온 이광선(李光善)씨가 회관 부지를 기증하였으며, 마을주민들은 감사의 뜻으로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기념비 전면에“12대에 걸쳐 이 마을에 거주해 온 이광선(?光善)씨가 회관부지를 기증하여 주셨기에 마을주민들은 감사의 뜻으로 기증자의 덕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움니다. 2005년 6월 29일”이라 새기고 뒷면에는 이장, 대동계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반장의 이름과 주민(세대주)이름을 새겼다.[살미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