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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신매리(乷味面 新梅里) 본문
신매리는 살미면 법정리동의 하나로, 살미면 중앙에 위치한다. 본래 충주군 살미면 지역이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매남리(梅南里)와 신담리(新潭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매리(新梅里)라 하였으며, 1985년에 완공된 충주다목적댐 공사로 인하여 문골, 하매남, 입석 등의 자연마을이 수몰되고 변두리 일부분만 남았다.
동쪽으로는 충주호를 건너 문골에 3호가 거주하는데, 무릉리, 신당리와 접하며, 서쪽으로 상매남리는 설운리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충주호를 가로질러 내사리와 접하며, 북쪽으로는 재오개리와 접하고 있다.
매남(梅南)은‘매내미’로 불리며 옛날에 매화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이 지역에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는데 신매리의 선돌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몰되기 전에는 살미국민학교가 있었으며 천주교회와 감리교회, 진후효자정문(陳孝子旌門)을 비롯하여 엽연초주재기사사무실, 정미소, 주막, 잡화상점, 미륵댕이미륵(아기미륵)이 36번 국도변에 있었으며, 선돌(?石)이 있어 선돌백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전주이씨(全州?氏)의 세거지(世居地)인 매남리로 가는 곳에 시내가 흐르는데 1972년에 새마을사업으로 25m의「신매교」를 가설하였으며, 1977년에는 선돌백이보 460m도 설치하였다.
36번 국도를 따라 작은 하천이 흘러 동으로 문화리를 거쳐 한천(寒泉)에서는 월악산(月岳山) 계곡에서 흘러오는 월천(月川)과 합류하여 남한강으로 들어가니 이 일대가 지금은 충주호 중에서 가장 넓은 수면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지난날에는 비교적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었던 지역으로 살미면 내에서 번성했던 마을중의 하나였다. 일찍이“신매리향약(新梅里鄕約)”을 만들어 실천해 왔으며, 예로부터 예절을 숭상하며 인심 좋은 마을로 이름난 곳이기도하다.
전주리씨와 여양진씨 그리고 청송심씨가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전주리씨와 청송심씨는 약 400년간, 여양진씨는 약 300년간 신매리에 세거하였다. 전주리씨 종중에서는 유물관을 매남마을에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몰당시에는 120호가 넘는 가구를 중심으로 500명 가까운 주민들이 농업에종사하며 살았고, 논농사를 중심으로 고추와 담배가 특화작물로 재배되었던 곳이나 현재는 수몰로 인하여 거의 이주하고 16세대 36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살미면 관내에서 가장 작은 이동으로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살미면 관내에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이 없는 유일한 마을이기도 하다.
수몰 전에는 음력 정월 보름과 칠월 칠석 등 일년에 두 번 지내던 마을의 동제도 이제는 폐지되었고 마을의 대동계는 매년 12월 25일로 정해서 개최하였으나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어 변경하기로 하였으며 거주하는 세대가 적기때문에 때로는 대동계를 개최하지 않고 건너뛰기도 한다. 수몰 전에는 대동계장이 따로 있었으나 그 후 이장이 겸직하여 운영하였으나 현재 다시 대동계장을 선출하여 대동계를 주관하고 있다. 마을이 적다보니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에게 지급되던 사례비도 지금은 없어진 상태이고 대동계의 기금은 현재 약 1,000만원 정도가 적립되어 있다.
매내미(梅南) 는 신매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전주이씨가 처음으로 이곳에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옛날에는 매화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후 대부분 타지로 이주하고 상매남에 전주이씨(매내미 이씨) 문중에서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였다.
유물관은 매남전주이씨 유물관이란 표지속과 함께 마당으로는 전주이씨와 관련된 비석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2층으로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였다
유물전시관 앞에 자리한 이병숙의 비석은 조선조 고종 때 세워진 행절제겸포리이공병숙영세불망비(?節制兼捕吏?公秉淑永世 不忘碑)의 복원비 이다.
1868년(동치7년) 고종 5년 나라에서 주관하여 강화도에 영세불망비가 세워진 것을 2000년 3월 전주이씨화의군파 대형공지파(全州?氏和義君派大亨公支派) 종중에서 복원 건립하였다.
매남마을 자랑비는 총 높이 297㎝(시멘트기단에 가로 120㎝, 세로 70㎝, 높이 96㎝의 화강암 붙임돌 위에 가로 97㎝, 세로 48㎝, 높이 76㎝의 화강암 비신을 세우고 전면에는 오석을 붙여“매남마을자랑비”비문을 새겼으며 뒷면에는 자랑비 건립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 위에 최대 너비 200㎝, 높이 125㎝, 두께73㎝의 자연석 비갓을 얹고 전면에「신매리」라고 새겼다)
“매남마을자랑비”우리의 옛 마을은충주댐으로 수몰되었으나 예로부터 예절을 숭상하며 인심 좋은 마을로 이름났다.
이곳에 사시던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新梅里鄕約(신매리향약)」을 만들어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곧 德業相勤(덕업상근) 過失相規(과실상규) ?俗相交(예속상교) 患?相恤(환란상휼)의 四大德目(사대덕목)이었다.
또「매남 이생원댁 행실록」도 이 마을의 예절과 인심을 표방하고 있어, 그 내용중 감명깊은 인목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집을 짓고 살자 하면 동네가 으뜸이라
지친에서 떠나 살제 의(誼)없으면 못살리라
없는 것은 서로 주고 어려운 일 서로 구원
먼 데 지친 있다 한들 급할 때에 미칠소냐
동네 인심 잃었다가 절박할 때 뉘우치리
이런 아름다운 마을의 전통을 후세에 남겨 고향을 사랑하도록 여기에 비를 세우노라. 1994년 11월 1일 동향인 일동 건립
(뒷면)
신매리지역 수몰 10주년을 기하여 마을자랑비를 건립함에 있어 다음 분들의 공을 기리고자 한다.
- 다 음 -
중원군수 지원금 100만원
국가유공자 : 이익성 이완성 이재도 이재현 이재향 이재륜 이재원
성금기탁자
서울지구 : 이존성 이봉성 이재은 이재소 이영선 이재문 이치성 이재격 청주지구 : 이재호 이호근 이대성 이안성 이익성 이재곤 이재익 이재한
충주지구 : 이재창 이재붕 이재승 이소성 이선성 이재윤 이재숙 이쾌성 이혜성 이후성 이재관 이재유 이홍선 이동선 이재형 이재운 이재백 이창선 이관선 이원성 이광선
신 매 리 : 복원공파종중 신매·재오개양식계 이재웅 이명선 이은선 이래영 조성중 이재형 이부선 이호광
비문지은이 : 장기덕 쓴이 : 김용규 자랑비건립 추진위원회 원로회장 이재영. 이장 이호광. 새마을지도자 이재학
여기에 소개하는 신매리 향약(新梅里鄕約)은 수몰 전까지 신매리에 살았던이재붕(?在鵬)씨가 소장하고 있으며, 일제하(日帝下)의 것이라고 하나 문장(文章) 철자법(綴字法) 등을 고려할 때 광복(光?)이후에 작성된 동규절목(洞規節目)으로 생각된다.
이는 고래(古?)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인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을 자치적으로 실핼 함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전래(傳?)의 향약(鄕約)의 규정(規定)에 따른 현대식 동규(洞規)라 할 것이다.
제1장 총 칙(總則)
제1조 본 향약(鄕約)은 고래(古?)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인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을 자치적(自治的)으로 실행(實?)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본 향약의 취의(趣意)를 찬동(贊同)하고 본동(本洞)에 거주하는 15세 이상의 남·여로서 약문(約文)대로 실행할 것을
약속한 자를 약원(約員)으로 한다.
제3조 본 향약을 실천하기 위하여 다음 역원(役員)을 두며 임기는 1년으로 한다.
도 약장(都約長) 1명 부 약장(副約長) 3명 직월(直月) (유사 有司) 4명 사화(司貨) (재무 財務) 2명 강사(講師) 약간명
도약장(都約長)은 약원(約員)을 통솔(統?)하며, 선(善)을 권장(勸奬)하고, 과실(過失)을 규계(規戒)하여 향리(鄕里)를 선화(善化)할수 있는 학식덕망(學識德望)이 높은 자로써 약원일동(約員一同)이 추대(推戴)한다.
부약장(副約長)은 학식덕망(學識德望)이 높은 자로써 약원일동(約
員一同)이 추대(推戴)하여 도약장(都約長)을 보좌(補佐)하고, 도약
장이 유고(有故)할 시는 이를 대리한다.
직월(直月)은 도약장(都約長)이 약원(約員) 중에서 위촉하고 약원전체의 일상행위(日常?爲)를 감찰기록(監察記?)하여 이를 예회일?會日)에 도약장(都約長)에게 보고한다
사화(司貨)는 약원(約員) 중에서 재정상(財政上) 신용 있는 자를 도약장(都約長)이 위촉하고 약(約)의 금전출납(?錢出納)을 장리(掌理)한다.
제4조 본약(本約)에 좌(左)의 각적(各籍)을 둔다.
원적(元籍) 도약장(都約長) 이하 약원(約員) 전체의 성명 및 생년월일을 기재한다.
선적(善籍) 약원(約員)의 선행(善?)을 기록한다.
악적(惡籍) 약원(約員) 중 중벌(中罰) 이상자를 기록한다.
과적(過籍) 하벌자(下罰者)를 기록한다.
제5조 약원(約員)이 본약(本約)을 위반하였을 때에는 좌(左)의 벌칙(罰則)을 적용한다.
최고벌(最高罰) 손도(損徒)로 선고(宣告)하고 약적(約籍)에서 제명(除名)하는 동시에 약원일동(約員一同)이 연서관고(?署官告)한다.
손도(損徒)라 함은 일향전원(一鄕全員)이 문제단절(文際斷絶)함을말한다.
상벌(上罰) 손도유예(損徒猶豫)를 선고(宣告)한 후에 악적(惡籍)에기록한다.
중벌(中罰) 대책(大責)이니 약회일공석(約會日公席)에서 질책(叱責)하고 과적(過籍)에 기록한다.
하벌(下罰) 소책(小責)이니 약장(約長), 부약장(副約長) 면전에서 훈계(訓戒)하고 개전(改悛)을 촉구한다
하벌(下罰) 중벌(中罰)을 받은 자가 2개월을 경과하는 중 개전(改悛)의 태도가 확실한 것을 약원전원이 확인할 시는 악적(惡籍)에 기재된 것을 제거(除去)한다.
상벌자(上罰者)라도 손도유예선고(損徒猶豫宣告) 후 개과천선(改過遷善)함이 현저(顯著)한 것이 약중(約中)에서 공인(公認)할 시는 손도유예(損徒猶豫)를 취소하고 악적기록(惡籍記?)을 제거(除去)하여 전과 같이 대우(待遇)한다.
수벌자(受罰者)가 회과(悔過)의 기색(氣色)이 없이 도리어 원한(怨恨)을 품은 자는 하벌(下罰)은 중벌(中罰)에 중벌(中罰)은 상벌(上罰)에 상벌(上罰)은 최상벌(最上罰)에 이기(移記)한다.
제6조 본약(本約)에는 정기회(定期會)와 임시회(?時會)를 둔다 정기회는 1개년(個年)중 1월, 3월, 5월 7월, 9월, 11월의 삭일(朔日)로 하고 임시회는 특별히 사정이 유(有)할 시에 개최한다.
제7조 약장(約長)은 직월(直月)의 보고를 재료(材料)로 하여 선악판정(善惡判定)을 전원(全員)의 공론(公?)에 의하여 결정하고 이를 각기선적(善籍), 과적(過籍)에 기록할 지며, 기왕(旣往)에 판정(判定)을받은 자가 개전(改悛)되어 약원(約員)이 다수인증(多?認證) 할 시는 각적(各籍)에서 제외(除外)한다.
단 벌(罰)을 받은 자로써 회개(悔改)의 기색(氣色)이 없고 도리어 원한(怨恨)을 품고 약(約)을 훼손(毁損)하는 사실이 유(有)할 시는 가일등(加一等)의 중벌(重罰)에 이록(移?)한다.
제8조 기타 향리(鄕里) 선화(善化)에 대한 약원(約員)의 의견이 유(有)할시는 이를 토의결정(討議決定)한다.
제2장 덕업상권(德業相勸)
제9조 부모에게 효도하여야 한다. 효도라 함은 성심으로 부모를 공경(恭敬)하고 감지(甘旨)로 봉양(奉養)하는데 힘쓸 지며, 부모 뜻에 승순(承順)하여 감(敢)히 어그러짐이 없고 항상 온순(溫順)으로 응대(應對)하며 몸가짐을 주의하여 부모에게 염려(?慮)를 끼치지 말며, 재화(財貨)를 부모님이 쓰는데 맡기며, 병환(病患)이 있으면 우념(憂
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성으로 의약(醫藥)을 구하여 진심으로 치료하며 상사(喪事)에 대하여는 슬픔을 다하여 부모의 생존시를 추모(追慕)하여야 한다.
제10조 멸사봉공(滅私奉公) 생명을 국가에 바칠 각오로써 충성(忠誠)을 다하여야 한다.
제11조 동기간에 서로 사랑하고 유무(有無)를 서로 통(通)하며 좋은 것과 싫은 것은 반드시 나누며 서로 부조(扶助)하여 일신(一身)과 같이하는 형제간에 우애(友愛)가 있어야 한다.
제12조 년령이 20세 이상이면 반드시 자기부모와 같이 공경(恭敬)하고 10세 이상이면 형과 같이 공경하여야 한다.
제13조 남·여 간에는 예절(?節)에 주의하여 풍기(風紀)를 바르게 하며,부부간에도 서로 공경(恭敬)하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용서(容恕)하며, 너무 억누르지 말며,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제14조 동족(同族)은 촌수(寸?)의 원근(遠近)을 막론하고 동혈(同血)의 관계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 더욱 친목(親睦)하여야 한다.
제15조 인가(?家)와는 유무(有無)를 서로 융통(融通)하며, 환난구조(患難救助)하여 친선(親善)을 다하여야 한다.
제16조 자녀를 가르침에 반드시 선(善)으로써 하며, 감(敢)히 권태와 방탕에 흐르지 않게 하며, 타인과 다툴 때는 곡직(曲直)을 막론하고 자녀를 억제(抑制)하여야 한다.
제17조 도(道)로써 몸을 다스리며, 사랑으로써 마땅히 할일만 하고, 예(?)로써 집을 받들며, 예법(?法)으로 가도(家道)를 세워야 한다.
제18조 언어(言語)는 반드시 충신(忠信)하여 진실하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제19조 행실(?實)은 반드시 착실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사람의 착한 것을 보면 반드시 행(?)하며, 자기의 허물을 들으면 반드시 고치며,벗을 가리되 어진 사람을 친(親)하며, 빈곤(貧困)하여도 청렴(淸廉)한 절개(節介)를 지키며, 부유(富裕)하여도 예의(?儀)를 좋아하여야 한다.
제20조 가계(家計)를 구차함이 없이 하며, 상과(上課)를 부지런히 하며, 사람의 약속을 이행하며, 사람의 환난(患難)을 구제(救濟)하며, 사람의 과실(過失)을 바로잡으며, 사람을 위하여 일을 꾀하며, 사람의 투쟁(鬪爭)을 화해(和解)시키며, 사람의 시비(是非)를 결단(決斷)하며, 공중(公衆)의 이익을 일으키며, 조세(租稅)의 체납(滯納)이 없
게 하며, 법령(法令)을 준수(遵守)하여야 한다.
제21조 제9조 내지 전조(前條)에 열거한 덕업(德業)은 약원(約員)들이 각각서로 힘쓰며 서로 근면(勤勉)하며 예회일(?會日)에 기능(其能)한자를 추거(推擧)하여 선적(善籍)에 기재(記載)하고 기능(其能)치 못한 자를 선도(善導)하여야 한다.
제3장 과실상규(過失相規)
제22조 좌(左)에 열거(?擧)하는 의(義)에 범(犯)하는 6개과실(?個過失)은 서로 바로잡아 고쳐야 한다.
1. 술을 절조(節調)없이 마시고 훤소(喧笑)하고, 다투며 음란(淫?)한일을 좋아하고, 노름을 일삼아 업(業)을 폐(廢)하는 일이 있는 것.
2. 여하한 경우라도 분내어 욕설과 구타를 일삼는 것.
3. 몸 가지기를 삼가지 아니하여 연장자(?長者)와 덕망(德望)있는 자를 업신 여기며, 강한 것을 믿고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스스로 높은체 하고, 남을 낫게 여기며, 치가(治家)하기를 규모(規模)가 없이 하여 예법(?法)에 어그러지는 것.
4. 말이 거짓이 많아 사람을 속이며, 남의 발음을 미워하며, 또 남을 희롱하여 모욕하기를 좋아하며, 남의 일을 방해하기 좋아하며, 남과의 약속을 저버리기를 예사로 하며, 혹 허위의 말을 전하여 여러 사람을 의심케 하며, 남의 없는 허물을 말하여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적은 것을 크다 하며, 낯으로는 옳다하고, 마음으로는 그르게 여기며, 남의 숨은 일과 오랜 허물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
5. 사람과 교역(交易)할 때 남에게 손해가 되고 자기만이 이익이 되는것을 좋아하며, 의리(義理)와 염치(?恥)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익(?益)을 취(取)하며 사람의 뇌물 받기를 좋아하는 것.
6. 무녀(巫女)와 복자(卜者)를 숭상(崇尙)하는 것.
제23조 좌(左)에 열거(?擧)하는 약(約)에 범(犯)하는 4개 허물을 고쳐야한다.
1. 덕업(德業)을 서로 려(勵)치 아니하는 것.
2. 과실(過失)을 서로 바로잡지 아니하는 것.
3. 예속(?俗)으로 서로 사귀지 아니하는 것.
4. 환난(患難)을 서로 도와주지 아니하는 것.
제24조 몸을 닦지 못하는 5개 허물이 있으니 이를 고쳐야 한다.
1. 흉하고 간(奸)하고 음란(淫?)하고 나태(懶怠)하고 방탕(放蕩)한 사람과 교제(交際)하는 것.
2. 놀기를 일삼아 업(業)을 게을리 하고, 일없이 출입(出入)하여 사람을 방문(訪問)하고, 그 사람의 일을 방해하며 가사(家事)를 돌보지 아니하는 것.
3. 나가고 물러감을 거칠게 하여 공손(恭遜)치 아니하며, 사람과 접(接)할 때 말을 높이하고 손을 내밀며, 설 때는 몸을 기울이고, 앉을때는 걸쳐 앉으며, 의복을 너무 화려하게 꾸미며, 혹 의복을 정제(整齊)치 못하며, 말을 경솔(輕?)히 하고, 웃기를 때 없이 하여 마땅히 말할 때 말하지 아니하고, 말하지 아니할 때 말하여 위의(威儀)를 잃
는 일.
4. 일에 본의(本意)를 잃는 일, 기회를 놓치는 일, 세금에 납기를 지키지 않는 일, 사람과 계약(契約)을 잃는 일.
5. 재력(財力)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과다한 비용을 내는 일, 정도에 넘치는 주의(酒儀)를 베푸는 일.
제25조 제22조 내지 전조(前條)에 열거한 과실(過失)은 약원(約員) 각자가살피며, 서로 엿보고, 경계하며, 허물이 적을 때는 직월(直月)로 하여금 약장(約長)에게 고(告)하게 하며, 그 진상을 전 약원(約員)에게 탐문(探問)한 후 과적(過籍)에 기재하고, 의리(義理)로 논(論)하여 개과(改過)토록 하여야 한다.
제4장 예속상교(?俗相交)
제26조 장유유서(長幼有序)는 하(下)와 가(加)히 구별한다.
1. 존자(尊者) 20세 이상으로 부행(父?)에 있는 자. 단 사제간(師弟間)이면 20세 이하라도 존자(尊者)로 대한다.
2. 장자(長者) 10세 이상으로 형행(兄?)에 있는 자. 단 10세 이상자라도 혹시 교집(交執)이나 소년 시부터 경대(敬待)하는 자이거나 덕위(德位)가 있을 때에는 존자(尊者)로 대한다.
3. 적자(適者) 연상하(?上下) 10세 미만 자.
4. 소자(少者) 연령이 10세 이하 자.
5. 유자(幼者) 연령이 20세 이하 자. 단 연령이 유소(幼少)하나 덕(德)이 있으면 적자(適者)로 한다.
제27조 배알(拜謁)은 좌(左)의 구별에 의하여 행(?)하여야 한다.
1. 세수(歲首)의 배(拜) 정월 3일 이내
2. 사퇴(辭退)의 배(拜) 원행(遠?)을 고(告)할 시.
3. 견신(見身)의 배(拜) 원행(遠?)에 회환(回還)하였을 때.
4. 축하(祝賀)의 배(拜) 존자(尊者)의 내방(來訪)이나 과유(跨遺)를 칭사(稱辭)할 때.
제28조 배례(拜禮)하는 방법은 좌(左)의 구분에 의하여 행하여야 한다.
1. 존자(尊者)를 실외(室外)에서 뵈였을 때 존장(尊丈)이 실내(室內)에서 의자에 걸터 앉았을 때는 경례(敬禮)를 하고, 평석(平席)에 좌(坐)하였을 때는 배례(拜禮)를 한다.
2. 유자(幼者)가 존장(尊丈)집을 방문하였을 때는 문전에 당도하여 주인의 식사 여부와 타객(他客)의 유무(有無)와 소관사항(所管事項)에 방해유무(妨害有無)를 헤아려 방해가 될 듯 한 경우는 물러가야한다.
3. 객(客)이 주인을 볼 때 별로 품백(稟白)할 일이 없고, 또 주인이 다른 말이 없을 때는 물러감을 고(告)하여야 한다.
4. 주인이 권태빛이 있거나 혹 일이 있는 듯 하거든 물러감을 고하여야한다.
5. 도중(途中)에 존장(尊丈)을 만났을 때는 존장(尊丈)앞에 가서 공읍(恭揖)하고, 존장(尊丈)이 말씀이 없거든 읍(揖)하고, 도측(道側)에 퇴립(退立)하였다가 장자(長者)가 지난 다음에 행(?)할 지며 만일 존자(尊者)와 장자(長者)를 노상(路上)에서 만났을 때에는 자기는 도행(徒?)하고, 존장(尊丈)이 승차하였거든 회피(回避)할 것이며,
만일 존장(尊丈)이 정차(停?)하거든 차측(?側)에 나가 공읍(恭揖)한다.
6. 집회(集會)에는 연령순으로 하되 환영(歡迎)이나 송별(送別)인 경우에는 초청을 받은 자로 상객(上客)을 삼아야 한다.
7. 경사(慶事)에는 반드시 하례(賀禮)하고, 흉사(凶事)에는 반드시 조위(弔慰)하되 의복은 단정을 기(期)하여야 한다.
8. 상사(喪事)에는 문상즉시(問喪卽時)로 직월(直月)이 동약(同約)에게 주지(周知) 시키고, 약원(約員) 일동이 제회(齊會)하여 상중범백(喪中凡百)을 논의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가무(歌舞)와 잡기(雜技)를 금(禁)하여야 한다.
9. 장사(葬事)에는 약원(約員)이 일제히 회장(會葬)할 지며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도 조위(弔慰)하여야 한다.
제5장 환난상휼(患難相恤)
제29조 좌(左)의 구분에 의하여 환난(患難)을 상휼(相恤)하여야 한다.
1. 화재(火災) 피해의 정도에 따라 구제(救濟)할 것.
2. 도적(盜賊) 피해의 정도에 따라 구제(救濟)할 것.
3. 질병(疾病) 빈가(貧家)이면 약중(約中)의 첨의(僉議)에 따라 기의약비(其醫藥費)를 보조하고, 만약 경운(耕耘)이 불능(不能)하면 약원(約員)이 협력하여 경운(耕耘)을 필료(畢了)할 것.
4. 사망(死亡) 조위(弔慰)와 부의(賻儀)는 물론이나 빈핍(貧乏)이 태심(太甚)하면 부의(賻儀)한 외에 수력(隨力) 추렴하여 재화(財貨)로써 구제(救濟)할 것.
5. 고약(孤弱) 약중인(約中人)으로서 사망한 후에 그 자손이 고약(孤弱)하여 의탁(依託)할 곳이 없는 자는 기가력(其家力)이 자족(自足)할만한, 즉 족중(族中)의 충신(忠信)한 자를 택하여 기출납(其出納)에 임(任)케 하고 기가력(其家力)이 빈핍(貧乏)하면 동약(同約)이 협력 구제(救濟)하며 실소(失所)케 하지 말며, 방일불량(放逸不良)
하면 감찰독려(監察督勵)하여 불의(不義)에 함(陷)치 아니하도록 할 것.
6. 무왕(誣枉) 약중(約中)의 인(人)이 무평(誣評)을 입어 자신(自伸)하기 불능한 자는 약중(約中)이 극력(極力)으로 구해(救解)할 것.
7. 빈핍(貧乏) 약중(約中)에 안빈수분(安貧守分)하는 자로써 생계(生計)가 궁색(窮?)하며 절량(絶糧)에 지(至)한 자는 약중(約中)에서재화(財貨)로 구제(救濟) 할 것.
(이하는 낙장 되어 없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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