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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 용강리 곡산연씨효열각(曾坪邑 龍江里 谷山延氏孝㤠閣) 본문
증평군 증평읍 용강3리(용문리)에 있는 곡산연씨의 정려각입니다. 1892년 조고종29년에 정려되였다.
곡산연씨는 남편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斷指注血) 연명시키고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른 뒤 자결한 장환일(張煥一 : 옥구 장씨)의 처 곡산(谷山) 연씨의 정려이다. 곡산 연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5일간 연명시켰으나 끝내 세상을 뜨자 약을 먹고 남편을 따라 숨을 거뒀다.
곡산 연씨는 1892년(조선 고종29), 영부인(令夫人)에 증직되고, 정려가 명해져 증평읍 용강3리에 세워졌다.
곡산연씨의 남편인 장환일은 자는 여수(汝壽)이며 본관은 옥구이다.
재주가 뛰여났고 학문을 겸비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종신토록 효도를 다하였다. 온 동네가 다 흠송(欽頌))하였으며 유림의 추천에 의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정려되였다.
효열문(孝㤠門)이라는 현판을 걸고있다
정려에는 효열증조봉대부동몽교관장환일처영인곡산연씨열녀지문 고종29년(孝烈贈朝奉大夫童蒙敎官張煥一妻令人谷山延氏㤠女之門 高宗29年)라고
적혀있는 정려기가 있다.
후손과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잘 관리 되고있다. 효열문 주위도 깨끗히 관리되고 정려기(旌閭記)도 잘 관리되고 있다..
정려문(旌閭門) 또는 효자문(孝子門)은 출입을 위한 문이 아니라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상징적인 건물이다. 여기에는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를 모시는데 그래서 정려각(旌閭閣) 또는 효자각(孝子閣)이라고도 부른다. 정려각이나 효자각은 규모가 작은 단칸 건물에 맞배지붕으로 하고 공포는익공 정도로 간단하며 벽은 홍살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정면만 홍살로 하고 나머지 삼면은 화방벽으로 하기도 한다. 정려각이나 효자문은 대개 마을 어귀에 세워 귀감이 되도록 했으며 따로 담장을 둘러 쪽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2007. 4. 10.,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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