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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면 고성리 성암 동제(靑川面 古聖里 聖岩 洞祭)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천면 고성리 성암 동제(靑川面 古聖里 聖岩 洞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4. 11. 09:12


고성리 성암마을의 동제당은 나무와 돌탑과 장승 선돌로 구성된 자연제장 이다.

수목은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이고 나무 앞에 돌탑은 높이 2미터 둘레 6미터정도의 크기이다.



탑에는 창호지를 꼿은 왼새끼를 걸어 금줄을 쳐놓았다.

탑 좌우로 장승을 세웠는데 장승앞에 자연석을 이용해 제단을 설치하여 놓았다. 장승의 크기는 2미터 80센티 정도이다.

장승은 매 3년마다 윤달 드는 해에 마을주민들이 공동작업하여 새로 만들어 세운다.



장승을 세울 나무에는 새둥지가 없고 곧고 깨끗한 것으로 골라 깍는다.

고성마을에서는 장승을 장군이라고 부른다.따라서 이 곳 동제는 장군제라고 하며 산신제 또는 서낭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서낭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삼일전부터 마을입구와 제주집 제당과 장승에 금줄을 친다.

제주로 지명된 사람은 마을밖으로 출입을 할 수 없으며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제주집에 출입이 절대로 금지된다.


제물은 청천장에서 상점을 미리 선정한 후 젯날 아침에 제주가 직접 구입한다.

비용은 동네기금에서 마련하는데 동네 답 2마지기에서 나오는 쌀로 충당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찍가서 가게문이 열리는데로 구입하여 사람들이 보기전에 구입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현재 이런 금기는 사라졌다.



제물을 구입할 때 상을 당했거나 임산부가 해산한 지가 일주일이 넘지 않은 가게는 피한다.

또한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다주며 시장에 나갈때 타고 갈 차도 미리 정한다.

제물로는 밤 대추 곳감 초 향 배 북어포 김 소지 문종이 등이다. 산신제때는 돼지머리를 올리지만 서낭제는 소지를 지낸다.


제주가 제물을 구입하여 집에 옮겨놓고 쌀 한말 한되 서홉으로 백설기를 찐다. 산신제때는 이보다 적은 서되 서홉으로 백설기를 만든다.

제기는 마을의 공동소유이며 평상시에는 산제당에 보관한다. 산신제때는 메를 지어 올리고 서낭제 때는 짓지 않는다.



제주집에서 제물을 준비하다가 저녁이 되면 농악대를 앞세워 풍물을 치며 제물을 손수레에 싣고 당 앞으로 간다.

현재는 마을주민들의 수가 줄고 고령화등으로 풍물은 생략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제물을 지게로 져서 이동하였는데 지금은 손수레를 이용해서 몇몇 사람이 옮긴다. 당에 도착하면 당안에 좌우로 초를 세우고 제물을 진설한다. 진설은 장승앞에서도 동일하다 진설이 끊나면 헌작을 하고  축문을 읽는다.


축문의 내용은 단순하며 축문이 끝난후 소지를 한다.소지는 제주소지-임금소지-개인소지(연장자순,군입대자 포함)이다.

개인소지가 끝나면 참석한 외빈중 순서에 의하여 소지를 올린다. 사람소지가 끝나면 대동소지와 우마소지를 한다.

소지를 올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정도가 걸린다.제가 끝나면 현장에서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음복을 한다.

제물을 먹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믿고 특히 밤이나 대추를 먹게 되면 득남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낭에 제의가 끝나면 천하대장군쪽으로 이동해 제물을 진설한다. 헌주후 재배하고 소지를 올리는 형식으로 간략하게 마친다.

그 후 지하대장군쪽으로 이동하는데 지하대장군쪽은 장소가 협소하여 소쿠리에 제물을 담아 놓는다.제의 절차는 천하대장군과 같다.

제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얹어 놓는다. 



서낭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서서 음복을 한다. 예전에는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동네아이들은 쥐불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풍물을 치며 흥겹게 놀았는데 지금은 마을회관이나 제주의 집에서 음복을 하며 논다. 제일과 그다음날은 주민들간에 게속해서 흥겹게 노는 날로 불린다.

만약 이날 일을 하게되면 일년 내낸 일을 하게 된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제사를 올렸는데도 금기사항을 지키지 않아 화를 당한적 이 몇번 있었다고한다. 제사를 지내는 도중에 흙을 뿌린 사람이 벌을 받은 경우와

제삿날 노루를 잡아 먹었는데 마을의 상여집에 불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