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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면 신흥리 김세준신도비(佛頂面 新興里 金世準神道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불정면 신흥리 김세준신도비(佛頂面 新興里 金世準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5. 7. 15:34

 

향촌리(鄕村里)는 불정면의 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세평리 서쪽은 음성군 남쪽은 괴산읍 북쪽은 앵천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불정면 개오개(介五介)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신흥리로 편입되였으며 1961년 행정리 동 세분화에 따라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향촌으로 불린다.

 

개오개(介五介)는 향촌의 옛이름이며 향촌이라 함은 마을입구에 수백년된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김세준신도비는 향촌마을 마을 못미쳐에 자리하고 있다.

 

 

 

김세준(金世準)은 1506년 (중종1년) 문과에 及第. 중종(中宗) 1년(1506) 병인(丙寅) 별시(別試) 정과(丁科) 8위(15/15)를 감찰을 거쳐 종성부사,해주목사등을 지내면서 청간으로 이름났고 左承旨에 이르렀다.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功을세워 정난공신에 책록되었다. 지례의 봉의사에 祭香.

 

 

 

승지(承旨)는 조선시대 중추부(中樞府)‧승추부(承樞府)‧승정원(承政院)의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으로 정원은 6원이다.


1392년(태조 1) 고려 말기의 중추원(中樞院)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마련되었으나, 1400년(정종 2)에 승정원(承政院)이 설치되면서 승정원으로 이속되었다. 1401년(태종 1)에 중추원이 승추부(承樞府)로 개편되고 승정원이 승추부에 통합되었다가, 1405년(태종 5)에 승정원이 다시 독립하였다.


1433년(세종 15)에 도승지, 좌‧우승지, 좌‧우부승지, 동부승지(同副承旨)의 육승지를 두어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게 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승선원(承宣院)으로 개편되면서 육승지는 오승선(五承宣)이 되어 도승선(都承宣)‧좌승선‧우승선‧좌부승선‧우부승선으로 개칭되었고 관계도 칙임관(勅任官)으로 바뀌었다.


육승지는 6방(六房)으로 나누어 육조(六曹)의 업무를 분담하였다. 도승지는 이방(吏房), 좌승지는 호방, 우승지는 예방, 좌부승지는 병방, 우부승지는 형방, 동부승지는 공방을 맡았다. 육승지는 육조뿐만 아니라 의정부‧사헌부‧사간원‧홍문관 기타 각 기관의 왕명 출납도 분담하여 모든 왕명은 육승지에 의해 해당 관서에 전달되었으며, 공문이나 건의사항 또한 국왕에게 직접 제출하지 않고 이들을 거쳐 왕에게 전달되었다.


또한 육승지는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과 춘추관(春秋館)의 수찬관(修撰官)을 겸하였고 도승지는 홍문관‧예문관의 직제학(直提學)과 상서원(尙瑞院)의 정(正)까지 겸직하였다. 정승‧판서 등 중신이 임금을 면담할 때도 이들을 배석시켰으며, 국가 중요회의에도 참석하여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등 국왕의 비서로서 모든 국정에 참여하였다.[대전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