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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면 연하리 신경림생가(老隱面 蓮下里 申庚林生家)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노은면 연하리 신경림생가(老隱面 蓮下里 申庚林生家)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6. 29. 07:03

 

세계화와 디지털 시대의 쾌속 질주 속에서 “시는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으며, “언젠가는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근래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간다는 생각으로 시를 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중얼거리면서.” ‘나는 왜 시를 쓰는가’(2004)라는 산문에서 신경림은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1956년에 ‘갈대’로 등단해 60년간 활동해온 현역 시인이 21세기를 맞으며 실감한 것은 시의 ‘무능’이었다. 이제 시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며, 인간과 삶의 실상을 보편적인 언어로 노래할 수 없다. 적어도, 시가 이렇게 무능해졌다는 소문이 번지고 있다. 신경림은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에 걸쳐 자신이 시를 통해 해온 일들이 별안간 부정되는 사태에 당혹한다. 신경림은 우리 시가 공동체와 그 대의적 믿음에 뿌리내리고 있던 시간과 운명을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신경림의 시는 폭력적인 역사와 현실에 저항하고, 서구적 근대에 맞서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되새기며,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인간다운 삶을 증언해 왔다. 시가 이 일들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공동체의 믿음이 이를 뒷받침했다.신경림은 비극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 시가 역설적으로 누려온 행복한 공동체의 시간이 끝나간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는 시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어야 하며, 소수의 사람만이 알아듣는 방언일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신경림의 시는, 많은 것을 소유하지만 아무것도 온전히 갖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가난하지만 삶을 전유했던 지난 시대의 기억을 공급하는 데 몰두한다. 이 ‘온전한 소유’의 문제는 삶의 장소에도 적용된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도 단 한 곳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반평생 동네 골목을 오갔을 뿐이지만 그 골목에 온전히 존재하면서 사람과 세계를 깊이 통찰한 ‘어머니’ 세대로부터 배워야 한다. 느릿느릿 걸으며 소소한 생필품을 사고 사람들을 만나는 동네 골목은, 세계 전체보다 더 크고 깊기 때문이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한겨레신문발췌

 

몇번이고 발걸음을 하려했지만 이 또한 인연이 있어야 된다는 자신의 합리화를 앞세워 느즈막히 이제사 신경림의 생가를 찾았다.여느 시절의 농촌집이 모두 그랬으랴 넒은 논을 바라보며 야트막한 담장을 두르고 있는 생가는 고즈넉하기만 하다.

신경림 생가라고 써있는 조금은 생경스러운 스테인 안내판이 이곳이 신경림의 생가라고 말해주고 있는것 같다.

 

신경림시인은 1936년 충북 노은에서 태여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55년에 낮달로 등단하였다.

 

신경림 시인 1936 충북 중원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5 <문학예술>에 시 <낮달>을 추천 받아 등단1973 시집 <농무>로 제1회 만해문학상 수상 1987 장시 <남한강> 발간 1989 <민요기행> 발간   대산문학상 수상
시집 <농무(農舞)> 창작과비평사 1973 <새재> 창작과비평사 1979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수필집 <다시 하나가 되라> 어문각
1986 시집 <씻김굿> 나남 1987 <남한강> 창작사 1987 <우리들의 북> 문학세계사 1988 <가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 1988 수필집 <진실의 말 자유의 말> 문학세계사 1988 <민요기행 1~2> 한길사 1989 


 

문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있는 행랑채는 많은 세월동안 많은 변화가 있어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 버린 듯 하다.

노오란 페인트 위로 작은 그림들이 왠지 쓸쓸함을 더해주는 듯한 느낌은 내 혼자만의 감정일까? 세월입은 작은평상은 기다림 그 자체이다.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되어 떠나려네[고향길]


 

시인이 시인의 꿈을 키우며 오고갔을 저 마당 그리고 뒤켠에 있는 우물가.

시인은 참 많은 꿈을 이 작은 집에서 그리고 또 지우고 했을것이다. 우물가에서의 시원한 등목도 글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세월은 흘러 우물은 사용하지 않고 지난 세월처럼 꿈속에 묻혀 있지만 시인의 가슴속엔 아직도 저녁준비하시며 쌀 씻는 어머니의 메마른 가슴처럼 남아있을것이다.시인의 시 고향길에는 이 우물을 칭하여 허기진 마음을 달래주던 한모금의 생수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집앞에 자리잡은 고목한그루를 바라보며 이 나무밑을 수도 없이 지내며 시인의 꿈을 키웠을 작은 소년의 모습의 신경림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