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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박물관 돌장승(淸州博物館 石長丞)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0. 18. 06:43


장승은 마을 또는 절 입구, 길가에 세운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을 말한다.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전국에 분포한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성기() 숭배에서 나온 것,장생고()에 속하는 사전()의 표지()에서 나온 것, 목장승은 솟대[]에서,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인데,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후()', '장생()', '장승(, ,)' 등으로 썼고, 지방에 따라 장승·장성·벅수·법수·당산할아버지·수살목 등의 이름이 있다.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 둘째 이정표 구실,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표시도 없으며, '천하대장군'류의 표시도 없고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을 빌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상()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 '상원대장군()'이라 새겨 있으며, 여상()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하원대장군()' 등의 글이 새겨 있다.

장소에 따라 채색·형상·크기 등이 다르나 모양이 괴엄()한 점만은 일치한다. 장승에 쓰는 장군명에는 민속적인 신명()이 등장하는데 동쪽에 있는 장승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西),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이라고 써서 세워, 축귀하는 민간 신앙의 성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장승을 서낭당·산신당· 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며,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되었을 때에는 제사를 지냈다. 장승 (두산백과)




장승의 어원은 1527년 최세진이 『훈몽자회()』(중권 제9장)에서후()를 설명하면서 ‘댱승 후’라 기록하였으며, 이 ‘댱승’이 ‘쟝승→장승’으로 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벅수라는 말은 경상도 해안 지역과 전라도에서는 장승을 벅수, 벅슈, 벅시 등으로 부른다. 이는 법수() 또는 법슈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확실치 않다. ‘법수’의 의미를 ‘신선’ 또는 ‘선인’으로 보는 이도 있다. 후()는 옛 문헌에 장승을 표현한 글자이고, 수살·수살막이·수살목 등으로 표현한 것은 장승을 세워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살()인 나쁜 재액을 막아 준다고 여기고 붙인 말이다




장승은 수호신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승의 몸체에 어디까지는 몇 리라고 써서 이정표 구실을 하기도 했다. 이를 노표()장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도 광주시 하번내, 전남 진도군의 석현리 장승에는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장승의 또 하나 기능은 풍수적으로 보아 지세가 허한 곳에 세워 지세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이를 풍수에서는 비보적() 역할이라고 하는데, 절이나 마을에서 고려하여 세웠다. 서산시의 해미읍성에는 사방에 비보장승을 세웠다. 장승은 마을의 네 방위에 세워 방위신 역할도 했으며, 성문 앞에 세워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도 했다. 아산 종곡리에는 동방·서방·남방·북방 축귀대장군을 세워 놓았고, 청양 용두리에는 장승 하나에 ‘동서남북중앙축귀대장군’이라고 써서 모든 방위를 지키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