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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동 임규의 묘지(楓洞 林珪의 墓地)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풍동 임규의 묘지(楓洞 林珪의 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0. 25. 13:57





충주시 풍동 평택임씨묘소가 있는 곳에 있는 임규(林珪)의 묘소입니다.

임경업의 5대조 임규(林珪)는 대제학을 지냈으나 고조부 임정수(林廷樹)가 진사를 한 뒤로는 벼슬길에 나선 사람이 없다.


임경업의 아버지 임황()[1557~1632]이 1500년대 말이나 1600년대 초 충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임황의 증조할아버지 임규()와 할아버지 임정수()의 묘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원주에서 충주로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임규와 임정수의 묘를 이곳 충주시 풍동으로 이전하여 묘소를 재정비하고 단비를 세웠다. [平澤林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평택임씨는 임팔급()을 시조로 한다. 임팔급은 당나라 문종 때 한림학사를 지내고 8학사 중 한 명으로 신라로 와서 귀화하여 팽성(현 경기도 평택시)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헌 상 정확한 계보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후손들에 의해 고려 말 세자전객령겸연희궁부사를 지낸 임세춘()을 중시조 겸 일세조로 하고 평택을 본관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평택임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9명, 공신 1명, 대제학 1명, 청백리 4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평택임씨는 인조 때 명장 임경업()을 비롯해 광주중군을 지낸 임승업(), 사헌부지평을 지낸 임형업(), 희천군수를 지낸 임준업(), 정주목사를 지낸 임재수(), 구성부사를 지낸 임필영(), 호군을 지낸 임백현() 등을 배출했다.
펑택임씨[平澤林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새로만든 석물인 묘비에는 정헌대부행병조판서예문관대제학증익충정평택임공규지묘정부인벽진이씨부좌(正憲大夫行兵曹判書藝文館大提學贈謚忠貞平澤林公珪之墓貞夫人碧珍李氏袝左)라고 음기되여 있으며 문인석과 동자석등 석물은 새로 구비하였다.무덤에는 호석을 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