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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동 임황의 묘지(楓洞 林篁의 墓地)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풍동 임황의 묘지(楓洞 林篁의 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0. 25. 08:54





평택인 임황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 풍동의 명칭의 유래는 과거 달천 남쪽 구릉 지대에 단풍나무가 많아 이 지역을 단풍골이라 불렀다. 이 단풍골을 한자로 표현하면서 풍동(楓洞)이 되었다. 그리고 달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면서 마을 이름도 상풍, 중풍, 하풍이다.







임황(林篁)의 자는 벌숙(筏叔), 호는 추운(秋雲)이며,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4남인 임경업의 공으로 특별히 증직되었다. 장남 임성업(林成業)은 정헌대부예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시감정공(正憲大夫禮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諡監正公)이며, 임승업(林承業)은 통정대부행맹산현감(通政大夫行孟山縣監), 임형업(林亨業)은 증중직대부사헌부지평(贈中直大夫司憲府持平), 임사업(林嗣業)은 선전관, 임준업(林俊業)은 구성부사(龜城府使), 임홍업(林弘業)은 학생, 임흥업(林興業)은 훈련원주부로, 임황의 자손은 조선 중기에 명성을 떨쳤다.


충주시 풍동 단월대교를 건너 상풍마을에서 오른쪽의 산길로 약 1.5㎞ 정도 오르면 충주 임경업 묘소 주차장이 있고,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임황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아들 임경업의 묘는 임황 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임황 묘는 조선 중기에 썼을 것이나 구 묘표가 1883년(고종 20)에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임황의 아들 임경업이 복관된 1697년(숙종 23) 이후 정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1982년 5월 충민공임경업장군기념사업회와 임씨 대종회 공동으로 묘역 정리 사업을 하였을 때 임황 묘도 정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돌분의 형태로 규모가 크다. 높이 약 2m, 지름 약 7m, 길이 약 12m 정도이며, 묘 앞에는 138×87×43.5㎝의 호박돌로 받친 상석과 37.5×31×38㎝의 향로석이 있다. 62㎝ 높이의 동자석이 한 쌍이 있는데 두 손은 합장한 형태이고 얼굴 형태는 거의 없다. 망주석은 좌우측의 모양과 크기가 약간 차이가 있어 의아하다. 오른쪽의 망주석은 125㎝ 크기로 운문과 창 모양인 데 반하여 왼쪽의 망주석은 106㎝로 문양이 없는 8각의 형태이다. 112~114㎝의 문인석도 1조가 있는데 얼굴 부분이 많이 훼손된 모습이다.

구 묘표는 비좌 원수의 형태로 비신은 49.3~43×16.5×155㎝, 대석은 88×56×20㎝이며 복련의 문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비제는 4.5×4.5㎝의 해서체로 ‘증보국숭록대부영중추부사행절충장군충무위부사직평택임공휘황지묘증정경부인파평윤씨부좌(贈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行折衝將軍忠武衛副司直平澤林公諱篁之墓贈貞敬夫人坡平尹氏祔左)’ ‘숭정후사계미이월립(崇禎後四癸未二月立)’이라 음기되었다.

신 묘갈은 비좌 개석의 형태로 지붕돌 85.5×55×50㎝, 비신 52×21×142.5㎝, 대좌는 84×54×15㎝이며, 비제는 8×9㎝ 크기의 해서체로, ‘증보국숭록대부영중추부사행절충장군용양위부사직평택임공황지묘배증정경부인파평윤씨부좌(贈輔國崇祿大夫領中樞府事行折衝將軍龍驤衛副司直平澤林公諱篁之墓配贈貞敬夫人坡平尹氏祔左)’라 음기하였고, 뒷면에는 2.5×2.5㎝의 크기로 내력을 음기하였다.

충주 임경업 묘소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되어, 그 아래에 위치한 임황 묘도 주변 환경의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옆에는 아들 임승업 묘가 있고 산록 위쪽으로 임경업의 묘가 있다. 일반적인 사대부 묘소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