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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이백리 옥천이지당(郡北面 二栢里 沃川二止堂) 본문
충북유형문화재 제 42호로 지정된 옥천이지당입니다.
이지당은 조선중기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선생이 후학을 교육하던 서당으로 처음에는 각신동이라는 마을앞에 있었음으로 각신당이라 하였으나 그 뒤에 우암 송시열의 시전에 있는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 " 라는 문구에서 끝의"止" 자를 따서 이지당이라 하였다. 그 후 퇴락된 것을 1901년 광무 5년에 옥천읍 옥각리의 금씨, 이씨, 조씨, 안씨, 네 문중에서 재건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건물 구조는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일곱칸 측면 한칸의 팔작인데 가운데 삼칸은 대청이고 서편의 삼칸 중 두칸이 방이고 한칸은 부엌이며,부엌 위를 이층으로 하여 두 칸의 루각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편 한칸은 방이고 방위의 이층을 두칸의 루각을 만들어 여름에 사용하기에 좋도록 지었다. 이곳에는 송시열선생이 친히쓰신 "二止堂" 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중봉조헌 선생이 친히 쓰신 "覺新書堂"이라는 은 향토지료관에 전시되여있다.
이지당이 있는 지명을 이백리라 부르게 된 것은 자연마을들을 합쳐 새로운 리동을 만들면서 이지당(二止堂) 마을의 이 자와 백석(白石)의 백 자를 잣백(栢)자로 고쳐 이백리라 부르게 되었다. 이지당은 금씨, 안씨, 조씨, 이씨가 세운 각신서당(覺新書堂)이 있었는데, 조헌(趙憲)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친 서당으로 유명하며,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이지당이라 이름 지어주면서 마을이름도 이지당말이 되었다.
백석은 “힌독골”의 옛이름을 한자로 쓰면서 “흰”을 흰백, “독”을 돌석으로 써서 백석골이 되었다. 마을 앞에 흰차돌이 많았기 때문에 “흰독골”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이지당은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대사헌 송병선도 이지당을 방문한바 있다.
일찌기 일본의 침탈을 예견한 송병선은 구국을 위한 첫 강연지로 옥천 이지당을 선택하였고 이곳에서 충청 남부지역 유림들에게 국가가 존망에 기로에 있음을 호소한바 있다. 이지당은 중봉 조헌선생의 숨결이 있는 구국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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