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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용방리 곽자방충신문(伊院面 龍坊里 郭自防忠臣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이원면 용방리 곽자방충신문(伊院面 龍坊里 郭自防忠臣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11. 24. 20:25





이원면 용방리는 송시열과 많은 관련이 있다 우암의 외가가 있던 동네였기 때문이다.

곽자방의 충신문은 이원면 용방리 마을중앙에 우암선생유허비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곽자방은 임진왜란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선산이다.할아바지는 생원 곽지정(郭之楨)이고 아버지는 통정대부 곽언(郭諺)이며 어머니는 박씨이다.



옥천의 선산곽씨는 입향조의 11세손인 곽은(郭垠)의 후손으로 이 지역의 사족인 옥천전씨,하동정씨,개성김씨등과 함께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옥천의 사족으로 군림해 왔다.곽자방은 송시열의 아버지 송갑조를 사위로 맞이하여 후에 선산곽씨의 각종 문헌을 송시열이 짓게 되는 계기가 되였다.



또한 정유건의 조카 정점과 박인의 아들인 박익성은 곽은의 증손서(증손서)로 곽자방과는 4촌간이 된다.

이와 같이 옥천지역의 유력한 사족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선산곽씨에서 의병장에 나섰던 곽자방,곽현(곽현),곽숭인(곽숭인) 3인중에 가장 활발한 의병운동을 전개한 사람은 곽자방이였다.



곽자방는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로 있다가 옥천에 잠시 머무는 동안 1592년 임진난 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의 기의(起義)로 달려가니 조헌이 손을 잡고 "우리 일이 잘되겠다"라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순찰사 윤선각이 의병의 부모를 가두었으므로 곽자방이 망설이자 아버지가 "나는 괘념치 말라"로 하여 다시 조헌을 따라 갔다.

그 후 금산성 전투에서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곽자방(?~15920은 본관은 선산(). 할아버지는 생원 지정()이고, 아버지는 통정대부 언()이며, 어머니는 박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가 되었다.

그 뒤 옥천에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의 장졸들을 모아 조헌()의 휘하에 들어갔다. 의병장 조헌이 이끄는 향병() 1,700여명과 함께 보은을 거쳐 청주로 향하였다.그곳에서 의병장 신간수()·장덕개() 등과 승장() 영규()가 이끄는 3,800여명의 군사와 더불어 왜군과 싸워 청주성을 탈환하는 데 크게 활약, 전공을 세웠으나, 금산성전투()에서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곽자방[郭自防]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용방리는 이원면의 법정리이다.

금강 줄기가 마을 앞을 휘돌아 나가 경치가 빼어나다. 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구룡(구룡촌), 모시내, 아래말(하칠방), 옻방이(칠방), 평촌(세교리) 등이 있다. 구룡촌은 용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뒷 산봉우리가 아홉이며, 근처에 구룡쟁주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시내는 근처에 못이 있다. 옻방이는 옛날에 옻나무 칠을 만드는 집이 있었다고 한다. 평촌은 옻방이와 아래말 사이 벌판에 있는 마을이다. 문화유적으로 용문서당과 송시열 유허비가 있다.  용방리 [Yongban-ri, 龍坊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