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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원면 문주리 익안재(大召院面 文周里 益安齋)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대소원면 문주리 익안재(大召院面 文周里 益安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4. 22. 14:08



대소원면 문주리에 위치하고 있는 충주어씨 익안공파재실인 익안재(益安齋)입니다.

2014년 11월에 건립하였습니다.익안재는 대소원면 문주리 산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충주어씨의 재실의 위치는 덕암산 정기를 받아 옥년봉을 바라보는 복귀형(伏龜形) 큰자리에 수주강(달천강)이 용처럼 휘김은 곳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배산임수를 정확하게 지켜 충주어씨 익안공파 재실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익안재는 2억2천만원의 토공,건축비(부지매입비는 기증으로 제외)를 들여 2014년 8월5일에 착공하여 2014년 11월30일에 준공과 더불어 시제를 지냈다.



익안재 옆에 있는 건립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익안재는 충주어씨 시조 어중익(어중익)이 고려 금자광록대부행문하시중평장사(金紫光祿大夫行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내시고 중시조 어백평(魚伯評)이

고려 추충익찬사좌명공신광정대부판덕창부사(推忠翊贊仕佐命功臣匡靖大夫判判德昌府事)를 지냈다.

많은 선조님께서 문무에서 업적을 남기시어 선조님들의 휼룡하신 업적을 숭모하는 마음과 자손만대의 번영을 위해 재실을 건립하였다

2014년 11월 30일 충주어씨 익안공파일동.



건립비 뒷면의 추진위원회 명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추진위원장 어기용 추진위원 어신언 어운용 어주용 삭주공파 대표 어하용, 덕산공파 대표 어성호, 토지기증 진위 참의공파 종손 어성문,대표 어형용 어명용,건축총괄 어성옥으로 되어 있다.



익안재의 주련과 상량문은 건축을 총괄한 충청북도 초대서예작가인 청구(靑丘) 어성옥씨가 썼다.

현판은 예서체 주련은 행초체 상량문은 전서체이다.




주련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안속순풍락태평(晏俗淳風樂太平)-안락하고 순박한 풍속에 태평함을 즐긴다.

격담어운어사학(格淡於雲語似鶴)-사람의 인격은 구름보다 맑고 말은 학과 같이 한다.

만당화기생가상(滿堂和氣生嘉祥)-재실의 화합한 기운은 상서로움을 내고있다.

자천강복천만년(自天降福千萬年)-하늘이 복을 내려서 천만년 가겠네.



충주어씨의 시조는 익안(益安) 어중익(魚重翼)으로 본래는 충주지씨의 6세손이였으나 어중익의 겨드랑이에 비늘이 세개가 있다고 하여 고려 태조왕건이 이것을 보고 [인갑(鱗甲)-비늘모양의 딱딱한 껍데기] 이 있으니 이는 물고가다 하여 어씨 성을 하사했다고 한다.


충주어씨 시조인 익안 어중익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고려시대 문관의 종이품관직),평장사(平章事-내사문하성의 정이품 벼슬로 문하시중의 다음벼슬), 문하시중(門下侍中-중서문하성의 최고관리로 품게는 종일품이다. 조선시대의 영의정과 같고 지금의 국무총리와 비슷한 위치의 벼슬이다)를 지냈다.




어중익 이후 계보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고려말 성균진사를 지내면서 가세를 일으킨 어승진을 중시조 겸 1대조로 하고있고 어승진의 증손자 어유소가 예성군에 봉해지면서 충주(옛 이름 예성)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지씨천년사(池氏千年史)에는 시조 어중익이 충주백에 봉해졌기 때문에 충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승진의 동생 어백평이 충주로 이주하여 살았고 어승진의 5세손 어번유의 후손이 충주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의 여러 지리지와 성씨 관련문헌에 충주어씨가 충주지역의 세거성씨로 기록되고 있다.

때문에 충주어씨는 고려말엽 어백평 때부터 충주에 세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충주시에는 100여가구 3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