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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면 노암리 식수기념비(道安面 老岩里 植樹記念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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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면 노암리 식수기념비(道安面 老岩里 植樹記念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4. 28. 06:34



노암4리(老岩四里) : 둥구머리/괴정(槐亭)/노하(老下) : ‘둥구머리’는 두타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 남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이 마을 동쪽에는 송정5리 ‘가무지’가, 서쪽에는 ‘뇌실’이, 남쪽에는 ‘진등’,‘행갈’이, 북쪽에는 송정2리 ‘통미’가 접하고 있다. ‘둥구머리’는 ‘둥구’와 ‘머리’로 나뉜다. ‘둥구’는 ‘둥구나무, 즉 크고 오래 된 정자나무’를, ‘머리’는 ‘한쪽 옆이나 가장자리’를 뜻한다. 따라서 ‘둥구머리’는 ‘둥구나무가 있는 마을’ 정도로 풀이된다. ‘괴정’은 ‘느티나무 정자’를 뜻한다. 이 마을 초입에는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현재 없어져 수령이나 크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수령이 4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고장을 개척한 선조들이 봄놀이 때 심었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는 어른 7명이 양팔을 벌려야만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였다. 국난이 있을 때 밤에 울었다고 하며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한국전쟁 때 경험했다고 한다. 현재는 새로 심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 마을은 『호구총수(戶口總數)』(정조 13년, 1789)에는 ‘노고곡하리(老顧谷下里)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1912)에는 ‘노하(老下)’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는 ‘老下/둥구머리’로 기록되어 있다. ‘둥구머리’는 약 400여 년 전에 생성되었으며, 초기에 청주한씨,곡산연씨,권씨,정씨 등이 입촌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밀양손씨,충주임씨,상산김씨,곡산연씨,충주지씨 등이 차례로 입촌하면서 현재의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1990년 1월 10일 대동계에서 만들어진 연반계가 잘 운영되고 있다.

특히 경로사상 고취를 위하여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년 일정액의 경로효친비를 지급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아지밭골 : ‘괴정저수지’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강아지밭골’은 ‘강아지’와 ‘밭골’로 나뉜다. 여기서 ‘강아지’는 동물을 뜻한다. 다만 강아지가 이 골짜기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괴정저수지(槐亭貯水池)/오리샘 : ‘괴정’ 북쪽에 있던 저수지이다. 1952년 8월에 착공하여 1957년 11월에 준공하였다. ‘괴정저수지’는 ‘괴정’과 ‘저수지’로 나뉘며, ‘괴정에 있는 저수지’로 풀이된다. 달리 ‘오리샘’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오리가 많이 서식하는 저수지’로 풀이된다. 현재는 경지정리로 인해 사라졌다. 


 



금방앗간터(金-) : ‘둥구머리’와 송정1리 ‘입장’ 사이에 있던 제련소이다. ‘금방앗간터’는 ‘금방앗간’과 ‘터’로, ‘금방앗간’은 다시 ‘금’과 ‘방앗간’으로 나뉜다. 따라서 ‘금방앗간터’는 ‘금을 제련하는 터’로 풀이된다. 이 제련소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없어졌으며, 현재는 ‘둥구머리’ 지광정 씨 논으로 경작된다. 


 노암광산(老岩鑛山)/송정광산(松亭鑛山) : ‘둥구머리’와 송정1리 ‘입장’ 사이에 있던 금광이다. 1937년에 개발되어 1944년에 폐광되었다. ‘노암광산’은 ‘노암’과 ‘광산’으로 나뉘며, ‘노암리에 있는 광산’으로 풀이된다. 이곳은 송정1리와도 가까워 달리 ‘송정광산’으로도 불렀다.


두리봉[-峰] : ‘둥구머리’ 서남쪽에 있는 산이다. ‘두리봉’은 ‘두루봉’의 변화형이다. ‘두루봉’은 ‘두루’와 ‘봉’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두루’는 ‘두르다[휘감아 싸다]’의 어간 ‘두르’의 변화형이다. 지명에서 ‘두루’는 ‘두루미’,‘두루바우’,‘두우배미’,‘두루산’ 등에서 발견되는데, ‘휘감아 싸다’를 뜻한다. 한자로는 ‘둥글다 圓’이 대응된다. 따라서 ‘두루봉’은 ‘휘감아 싼 봉우리’로 해석된다. ‘두루봉’은 지역에 따라서는 ‘두로봉’,‘두류봉’,‘두리봉’으로도 나타난다. 이 산의 꼭대기에는 쇠말뚝이 박혀 있는데, 이 쇠말뚝을 똑바로 쳐다보면 벼락을 맞는다는 속신(俗信)이 전했다. 그래서 쇠말뚝 주위에는 가능한 한 접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인가 고물장수가 쇠말뚝을 골동품으로 뽑아갔다고 한다.



만비기밭골 : ‘벼루재골’ 바로 밑[남쪽]에 붙어 있는 골짜기이다. ‘만비기밭골’은 ‘만복이밭골’의 변화형이다. 즉 ‘만복이밭골’이 이모음역행동화에 의해 ‘만뵉이밭골’로, 다시 모음변동에 의해 ‘만비기밭골’로 실현된 것이다. ‘만복이밭골’은 ‘만복이밭’과 ‘골’로, ‘만복이밭’은 ‘만복이’와 ‘밭’으로 나뉜다. ‘만복이’는 ‘만복’에 접미사 ‘이’가 붙은 어형이다. 여기서 ‘만복’은 인명일 수도 있고, ‘만복(萬福), 즉 복이 많음’이나 ‘만복(滿腹), 즉 음식을 먹어 뱃속이 가득 참’으로 볼 수도 있다.


수터골 : ‘둥구머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수터골’은 ‘숯터골’의 변화형이다. ‘숯터골’은 ‘숯터’와 ‘골’로 나뉘며, ‘숯을 굽던 터가 있는 골짜기’로 풀이된다. 연암골(硯岩-) : ‘둥구머리’ 북서쪽으로, 두타산을 오르는 골짜기이다. ‘연암골’은 ‘연암’과 ‘골’로 나뉘며, ‘벼루돌이 나는 골짜기’로 풀이된다. 이곳은 예전에 ‘연암’ 즉 ‘벼루돌’을 채취하던 곳이다. 베루재/베루재고개/연현(硯峴)/서낭당베루재 : ‘괴정저수지’ 위[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둥구머리’에서 송정1리 ‘입장’이나 연촌리로 갈 때 넘는 고개이다. 이 고개로 인해 마을 이름 ‘베루재’[연촌리]가 유래되었다. ‘베루재’는 ‘베루’와 ‘재’로 나뉘며, ‘벼루돌이 나는 고개’로 풀이한다. 그러나 ‘베루재’를 달리 풀이할 수 있다. 지명에서 ‘벼랑’은 매우 다양하게 실현된다. ㉠ ‘바람’으로 나타나기도 하니, ‘바람고지’,‘바람골’,‘바람들’,‘바람말’,‘바람모팅이’,‘바람바우’,‘바람실’,‘바람재’ 등이 그 예이다. ㉡ ‘바랑’으로 나타나기도 하니, ‘바랑골’,‘바랑끝’,‘바랑날’,‘바랑들’,‘바랑말’,‘바랑메’,‘바랑바구’,‘바랑배미’ 등이 그 예이다. ㉢ ‘벼루’로 나타나기도 하니, ‘벼루고개’,‘벼루들’,‘벼루말’,‘벼루모탱이’,‘벼루배미’,‘벼루재’ 등이 그 예이다. ㉣ ‘벼락’이나 ‘베락’으로 나타나기도 하니, ‘벼락산’,‘벼락고개’,‘벼락골’,‘벼락바위’,‘벼락배미’,‘베락골’,‘베락매’,‘베락바우’ 등이 그 예이다. ㉤ ‘비럭’으로 나타나기도 하니, ‘비럭골’,‘비럭굴’,‘비럭동’,‘비럭뜸’,‘비럭바구’,‘비럭보’,‘비럭재’ 등이 그 예이다. ㉥ 이밖에도 ‘베루’,‘베리’,‘비링이’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니, ‘베루골’,‘배루들’,‘베루메’,‘베루모퉁이’, ‘베리끝’,‘베리미’,‘베리바우’,‘베리산’,‘베리재’,‘비링이들’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본 예 ‘베루재’는 ‘벼랑으로 되어 있는 고개’로 풀이된다. 달리 ‘베루재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고개’의 뜻을 가진 ‘재’에 ‘고개’가 중복된 유의중복 어형이다. ‘연현’은 ‘베루재’의 ‘베루’를 ‘벼루[硯]’로 잘못 이해하여 한자 ‘연(硯)’으로 표기한 이름이다. ‘서낭당베루재’는 이 고개에 서낭당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본 예는 이곳에서 벼루돌을 채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벼루돌과 관련되는 이름으로 볼 수도 있다. 베루재골 : ‘괴정저수지’에서 ‘베루재고개’에 이르는 골짜기이다. ‘베루재골’은 ‘베루재’와 ‘골’로 나뉘며, ‘베루재에 있는 골짜기’로 풀이된다. 베루재들 : ‘둥구머리’에서 ‘괴정저수지’에 이르는 들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4년 이전)에 노하리(老下里)의 ‘硯峙坪/베루?’로 기록되어 있다. ‘베루재들’은 ‘베루재에 있는 들’로 풀이된다. 앞들 : ‘둥구머리’ 북쪽에 있는 들판이다. ‘베루재들’ 남쪽에 있다. ‘앞들’은 ‘앞’과 ‘들’로 나뉘며, ‘앞쪽에 있는 들’로 풀이된다. 응골 : ‘베루재들’ 북쪽에 붙어 있는 골짜기이다. ‘응골’은 ‘은골’의 ‘연구개음화형’이다. 전국적으로 ‘은골’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전부요소 ‘은’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첫째는 ‘은(銀)’과 관련시켜, ‘은을 캤던 골짜기’로 해석된다. 둘째는 ‘은(隱)’과 관련시켜, ‘숨은 골짜기’로 해석된다. 셋째는 ‘숨은’에서 ‘숨’이 생략된 것으로 보아, 역시 ‘숨은 골짜기’로 해석된다. 실제로 ‘은골’과 ‘숨은골’,‘숨어골’이 함께 쓰이는 곳도 있다. 이상으로, ‘은골’의 어원이 매우 다양하게 분석됨을 살펴보았다. ‘은골’은 은을 캤던 역사가 특별히 없다면, 둘째와 셋째 의미와 관련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은골’이나 ‘응골’은 ‘잘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골짜기’ 정도로 풀이된다. 풀무골 : ‘괴정저수지’에서 ‘베루재고개’로 오르는 골짜기이다. ‘풀무골’은 ‘풀무’와 ‘골’로 나뉜다.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이다. 따라서 ‘불무골’은 ‘풀뭇간[대장간]이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풀무’의 중세국어 ‘불무골’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자 지명 ‘야동(冶洞)’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호랑이콧등바위 : ‘괴정저수지’ 북쪽, ‘베루재고개’로 가는 쪽에 있는 바위이다. ‘호랑이콧등바위’는 ‘호랑이콧등’과 ‘바위’로 나뉘며, ‘호랑이의 콧등처럼 생긴 바위’로 풀이된다.[증평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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