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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면 유호재(文義面 榆湖齋)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문의면 유호재(文義面 榆湖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7. 28. 19:02




문의면에 자리하고 있는 고성이씨 재실인  유호재(榆湖齋)입니다.


유호재는 고성이씨(固城李氏) 재실로서 고려말 문신 철성부원군 문희공(文僖公)이존비(李尊庇1233-1287)선생을 모시는 재실이다.

이존비는 1233(고종 20)∼1287(충렬왕 13). 고려 후기의 문신입니다.

본관은 고성()이며, 초명은 인성(), 자는 지정()이다. 부인은 좌복야 한림학사() 이주일()의 딸이며, 아들은 우()·정()·숙()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 백문절()에게 글을 배워 문장과 예서()에 능하였으며, 유경()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유학에 밝았다.





재실인 유호재옆으로는 1965년에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이존비의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260년(원종 1) 과거에 급제한 이후 내시()에 입적되었으며, 이어 비서교서랑()·권지합문지후()·전중내급사(殿), 호부()·병부()·이부()의 시랑을 역임하고 1275년(충렬왕 1) 상서우승()·예빈경()을 거쳐 좌승지에 올랐으며, 이 때 필도치( : 의 서기직)의 일원이 되었다.

1279년 밀직부사로서 장군 정인경()과 함께 성절사(使)가 되어 원나라에 사행하였으며, 이듬해 지밀직사사·세자원빈()에 오르고, 1282년 지공거()를 역임하였다.

1284년 감찰대부(), 1287년에는 경상도·충청도·전라도의 도순문사가 되어 여몽군()의 일본정벌을 위한 병량() 및 군선()의 조달을 담당하였는데 제반조치가 적의하여 민원을 사지 않았다.

그 뒤 벼슬이 판밀직사사에 이르러 별세하자, 그의 죽음에 대하여 특히 세자가 울면서 심히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묘지명이 현재 전하며 회당화상()에게 보낸 칠언율시가 『동문선()』에 실려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존비 [李尊庇]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