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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면 화양계곡 금사담과암서재(靑川面 華陽溪谷 金沙潭과岩棲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천면 화양계곡 금사담과암서재(靑川面 華陽溪谷 金沙潭과岩棲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11. 3. 22:41



암서재는 1994년 1월 7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12월 29일 지정해제되었다. 화양구곡() 제4곡 금사담() 물가의 큰 반석가에 있는 서재로,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송시열()이 정계에서 은퇴한 후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화양구곡은 청계리에서 약 8km 지점에 있는 화양리 박대천()의 지류인 화양천을 따라 펼쳐진 명승지로 화양동도립공원 내에 있다. 이 계곡의 주위 바위 사이에는 노송이 울창하고 밑으로는 맑은 물이 감돌며 층암절벽이 즐비하여 경치가 매우 좋다. 암서재는 대지 약 65㎡ 정도에 목조기와로 2칸은 방이고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 안에는 현판 5점이 걸려 있다. 앞에는 암반 사이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후손들이 수리하였고, 1970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암서재기()에 '우암선생어병오년간축정사어계남()'이라고 씌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666년(현종 7) 8월 암서재를 짓고 이곳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암서재기의 글씨는 문인 권상하()가 쓴 것이다. 화양구곡 곳곳에는 지금도 〈비례부동〉등 송시열의 필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화양서원의 터도 이곳에 있다.



4곡 금사담()은 화양구곡 가운데서도 다시 손꼽히는 승경이다. 계곡에 가득, 미끈하게 잘생긴 바위들이 눕고 서고 앉았다. 맑은 물은 그 사이로 흐르며 제법 시퍼렇게 깊어지기도 하고 폭포처럼 허옇게 물방울을 튕기기도 한다. 물 아래 모래가 금가루 같다고 해서 금사담이다. 금사담 가 높직한 암반 위에 송시열의 서재이자 별장이던 암서재가 있다. 이 좋은 경치를 뜰로 삼아 앞쪽에 난간을 둔 자그만 집이다. 집 주변 부드러운 산은 붉은 줄기를 착착 드러낸 아담한 소나무들로 덮였고 바로 집 근처에는 아름드리 노송이 가지를 뻗고 있다. 이 집을 지은 뒤 송시열은 이렇게 읊었다. ‘시냇가에 바위벽 열리어 그 사이 집 한 간을 지었네. 고요히 앉아 성인의 가르침 받들어 한치라도 더위 잡고 올라보려네.’ 화양구곡이 무이구곡을 본뜬 것처럼 암서재는 주자의 운곡정사를 본뜬 것이다.


암서재 앞, 금사담 가의 바위벽에는 ‘’이라는 이름을 비롯, ‘’(충효절의)니 ‘ ’(창오운단 무이산공) 등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다. 창오산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산이고 무이산은 주자가 살던 산이다. ‘창오산은 구름이 끊어지고 무이산은 비어 있다’고 한 것은 명이 스러지고 ‘오랑캐’ 청이 서던 상황을 송시열의 입장에서 절박하게 표현한 것이다. 금사담뿐 아니라 구곡 곳곳에 새겨진 그 이름들은 송시열의 문인으로서 영조 때 정승을 지내며 노론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민진원의 글씨이다.

충효절의 네 글자는 명나라 태조의 글씨이며 다른 글자는 송시열의 것이라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