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청천면 화양계곡 읍궁암 (靑川面 華陽溪谷 泣弓岩)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천면 화양계곡 읍궁암 (靑川面 華陽溪谷 泣弓岩)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11. 3. 11:04

 

 

 

 

화양동계곡은 화양천 맑은 물을 끼고 산 속으로 10리쯤 뻗어 있다. 옛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라 일컬었다. 훤칠하고 깨끗한 바위들은 벽으로 치솟거나 너럭바위로 가로누웠고 옥 같은 물은 그 위로 미끄러진다. 양쪽 산기슭의 소나무들은 층층이 붉은 줄기를 드러내고 싱싱하게도 자랐다. 화양천 물은 흘러 달천으로 가고 달천 물은 다시 남한강 줄기에 보태지니 이곳 물은 한강까지, 서해까지 간다.

송시열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 골짜기에 들어앉아 글을 읽고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자신을 주자에 비유했던 그는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화양동계곡의 볼 만한 곳 아홉 군데에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이라 했다.

 

구곡중 제3곡인 읍궁암입니다.

화양구곡의 대부분은 경치나 모양의 모습에 따라 이름을 정했지만 이 곳 읍궁암은 송시열의 효종을 향한 마음의 정표로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게곡을 흐르는 물옆에 위치한 편편한 바위입니다. 바위위에 군데군데 패인자국은 송시열의 눈물자국이라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 옵니다.

 

읍궁암을 표시하는 비석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此日知何日
외로운 충정만 하늘에 닿았도다.           孤衷上帝臨
새벽이 되도록 통곡한 연후에,              侵晨痛哭後
또 다시 엎드려 무릎 꿇고 탄식하노라.    抱膝更長吟

 

물가에 편편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先生嘗於孝廟諱日 曉起痛哭於巖上 仍吟一絶 後人號其巖曰泣弓 盖取荊湖故事也 歲丁酉方伯尹公憲柱

謁廟訖大書泣弓三字刻石 視後其誠意至矣 尙夏謹書先生絶句於其末云 此日知何日 孤衷上帝臨 侵晨痛哭後 抱膝更長吟

 

 우암선생께서 일찍이 효종의 휘일에 일어나 바위 위에서 통곡하고 일절을 읊었다.

뒷사람들이 그 바위를 불러 읍궁이라고 하였다. 대개 형호의 고사를 취한 것이다.

정유년 방백 윤헌주가 사당을 참배하고 ‘읍궁암’ 석자를 크게 써서 바위에 새기어 후세에 보이니,

그 진실한 뜻이 지극하다. 권상하가 삼가 선생의 절구를 그 말미에 쓰니,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 외로운 충정만 하늘에 닿았도다.

새벽이 되도록 통곡만 하다가, 또 다시 엎드려 무릎 끌어안고 탄식하노라” 라고 하였다.

 

 

읍궁암 - 임상주 -

 

吁嗟彼盤石 아! 저 널찍하고 평평한 바위,

云胡名泣弓 어찌 하여 읍궁암이라 이름 했나?

孝廟之諱日 효종임금 제삿날이면

有臣號蒼穹  우암선생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네.

 

年年是巖上  세월이 지나도 이 바위에는

淚痕磨不磷  눈물 흔적 닳아 없어지지 않았네.

侵晨慟哭語  새벽에 통곡하며 탄식한 말씀,

可以泣鬼神  귀신을 울리겠도다.

 

읍궁암 - 권진응 -

 

 三曲巖如泛壑船 삼곡이라, 바위는 골짜기에 떠있는 배와 같은데

 貂裘泣血問何年 담비 갖옷 입고 피눈물 흘리기 몇 년인가?

 君民大計空遺廟 임금과 백성의 큰 계획 만동묘에 남아 있으니

 社宇聲聲聽可憐 만동묘에 통곡하는 소리 가련하네.

 

 

읍궁암 - 송흠학 -

 

三曲穹巖似跨船 삼곡이라, 읍궁암은 걸터앉은 배와 같은데

攀躋長憶泣弓年 올라가서 한참을 통곡하시던 그날을 생각해보네.

窮山血痕從誰灑 깊은 산에 혈흔(血痕) 누가 뿌려 놓았나?

惟有河西曠世憐 오직 시내 서쪽에 남아 오랜 세월 가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