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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면 사동리 안심사 법고(南二面 寺洞里 安心寺 法鼓) 본문
청주 안심사 비로전에 소장된 조선시대 법고이다.
안심사는 청주에 있는 구룡산(九龍山) 서쪽 기슭에 소재한 사찰로서 775년(혜공왕 11)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절을 짓고 그의 제자 수십 명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안심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1325년(충숙왕 12)에 원명국사(元明國師)가 중창하고 1626년(인조 4)에 송암대사(松庵大師)가 중수했다고 하는데 사역 내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의 연대와 대략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1613년(광해군 5)에 비로전을 창건하고 1842년(헌종 8)에 중수한 사실이 있으며, 또 대웅전의 처마 끝에 장식된 암막새기와에 새겨진 명문을 통하여 1672년(현종 13)에도 기와를 새로 얹은 사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자료로 보아 안심사는 창건 이후 현재까지 향화(香華)가 끊이지 않은 사찰로서 청주 인근에서는 최고 고찰에 속한다.
안심사에 소장된 법고(法鼓)는 목어(木魚), 운판(雲版), 범종(梵鍾)과 함께 불교의례에 사용되는 법전사물(法殿四物)의 하나로서 우주구성의 4대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을 상징하기도 한다. 즉 법고는 땅을, 목어는 물을, 범종은 불을, 운판은 바람을 각각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법고는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여러 개의 나무판을 이어 붙인 쪽 통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안심사 법고는 하나의 통나무 내부를 파내 이음이 없이 제작한 것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또한 규모에 있어서도 통의 길이가 84㎝, 지름이 69㎝에 이르는 원통형 북이어서 보기 드문 대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화재로 훼손되어 법고의 양쪽 북면(가죽)중 1면은 소실되고 1면은 파손된 상태로 남아 있다. 또한 측면에 장식되었던 단청 문양은 화재로 그을리고 퇴색되어 보이지 않는다. 측면에 3개의 쇠고리와 가죽을 고정시킨 쇠못은 대장간에서 무쇠를 단련하여 만든 것으로 본래의 형태가 남아 있다.
법고의 내면 4곳에 묵서가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시주자의 명단과 함께 ‘만력이십구년신축(萬曆貳拾玖年新築)’이라는 기록을 통하여 조선 1601년(선조 34)에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안심사 법고는 우리나라 법고의 역사와 제작기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당시 안심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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