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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면 삼용리 장충범묘지(遠南面 三龍里 張忠範墓地) 본문
원남면 삼용리 산소날에 있는 단양인 임란공신 장충범의 묘지입니다.
장충범 신도비를 보며 야산쪽으로 난 길을 따라 5분여 걷다보면 단양장씨의 묘역에 이릅니다.
장충범의 묘지는 아버지인 진사장언구의 산소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근간에 세운 장군석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충범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입니다.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효칙(孝則). 생원 장언구(張彦玖)의 아들이며, 부인은 청풍유씨(淸風劉氏)이다.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아가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채유종(蔡有終), 조웅(趙熊) 등 여러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5백여 명을 모아 6년간 싸우면서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하였다. 1597년(선조 30) 음성의 생골 전투에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절(殉節)하였는데, 시신을 찾지 못하여 의관으로 허묘(虛墓)를 만들었다.
묘소와 충신문 등이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산소날에 있다.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3등에 녹권(錄券)되고, 1857년(철종 8)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철종은 “창의(倡義)하여 순절한 충(忠)은 일월(日月)을 관통하도다”라고 하였으며, 정려를 내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충신문을 세웠다.
1860년(철종 11)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에 가증되었고, 1870년(고종 7)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 정려문(旌閭門)이 건립되었다. 광산 김재현(金在顯)이 정려기를 찬술(撰述)하고, 김학수(金鶴洙)가 신도비명, 김구수(金龜洙)가 묘지명, 최병심(崔秉心)이 유허비문, 이은상이 기념비문 등을 각각 찬술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서 조선 중기 의병으로 활동했던 장충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충범[?~1597]은 음보로 군자감주부를 지냈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여 향리인 삼생리에 피신하여 치료를 받았다. 그후 1597년에 의병을 모아 구진터(지금의 생극면 생리)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장공의 전사를 알려준 애마」는 장충범이 생전에 아끼던 애마가 그의 죽음을 알려준다는 이야기이다.
「장공의 전사를 알려준 애마」는 음성군 원남면 일대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과 2005년에 출간한 『음성의 구비문학』 등에 수록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남면 삼용리에서 살던 장충범은 의병을 일으키기로 마음먹고 종들과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서른 명 정도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변변한 무기도 없이 곡갱이와 쇠시랑, 몽둥이들로 무장을 한 터였다. 장충범은 이들을 이끌고 구진터에 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당시 왜군은 모두 신식 무기인 조총을 가져서 장충범 일행은 그자리에서 모두 죽고 말았다. 그후 이곳 사람들은 장충범과 민병이 죽은 곳을 ‘패전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장충범이 전사하자, 평소 장충범이 타고다니던 말이 그의 옷을 물고 삼생리 집으로 달려와서는 마당을 빙빙 돌며 소리내어 울었다. 말의 울음소리에 집안사람들이 뛰쳐나왔다가 피묻은 옷을 보고 장충범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과 친지들은 말이 물고 온 옷으로 장충범의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장충범의 애마를 정성껏 거두고, 명이 다하여 죽은 후에는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장충범의 전사를 알려주었다는 애마 이야기는 ‘민중 영웅 이야기’에 속하는 각편에 속한다. 민중 영웅 이야기는 대개 탄생·활약·죽음 등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장공의 전사를 알려준 애마」는 애마가 주인의 죽음을 알리는 모티프로 구성되어 영웅의 죽음을 성스럽게 하고 있다.
민중 영웅 이야기들은 영웅의 죽음을 죽음으로써 매듭짓지 않고 평소 주인공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이용하여 영웅성을 부여하는데, 「장공의 전사를 알려준 애마」에서는 장충범이 평소 타고다니던 말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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