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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동면 쌍정리 육선재(孟洞面 雙呈里 陸仙齋) 본문
쌍정3리마을에서 쌍정리삼층석탑을 보고 길을따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진주강씨의 재실인 육선재를 만나게 된다.
많은 사당이나 재실등의 현재의 모습이 그렇치만 제대로 관리가 되질 않으니 자꾸만 쇠락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맹동면에 육선재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진주강씨 문중의 재실이다
육선재(陸仙齋)는 비교적 근래에 제향을 위해 지은 진주강씨(晋州姜氏) 문중의 재실이다.
진주강씨맹동면종친회(晋州姜氏孟洞面宗親會)라는 현판만이 썰렁한 재실을 지키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앞 1칸은 툇간이다. 재실에는 ‘육선재(陸仙齋)’라고 판각한 편액을 걸었다. 중앙에 정문을 달고 ‘정효문(旌孝門)’이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외곽은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렀다
진주강씨는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강시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진주강씨(晋州姜氏)는 시조를 고구려의 무장 강이식으로, 본관을 진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강계용(姜啓庸)을 파조(派祖)로 하는 박사공파(博士公派), 강위용(姜渭庸)을 파조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강원로(姜元老)를 파조로 하는 관서공파(關西公波), 강민첨(姜民瞻)을 파조로 하는 은열공파(殷烈公派), 강감찬(姜邯贊)을 파조로 하는 인헌공파(仁憲公派) 등이 있다.
강시양(姜時良)[일명 강진문(姜晉文)]은 임진왜란 때 충청북도 괴산으로 피난중이었는데 꿈에 선인(仙人)이 나타나서 ‘후손 만대의 터전이 될 만한 곳이 서쪽 60리 되는 즈음의 맹자동((萬代後孫之地 西方六十里虛 孟子洞)’이라고 계시하여 그에 따라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한다. 강시양은 성균진사를 지낸 인물로 증조 할아버지는 예조참의를 지낸 강익이고, 할아버지는 부사과를 지낸 강극승, 아버지는 부사정을 지낸 강수경이다.
또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이 맹동면 마산리에 와 세거하였다.
음성의 인물지에는 진주강씨 기록이 없는데 이는 전란과 사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다만 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 일대와 쌍정리 등에 강회백 후손이 집성촌을 형성하여 18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세거지인 두성리는 맹동면 남쪽 함박산 줄기 아래 있고 서쪽으로 평야를 이루고 있으나 급격히 개발되어 가고 있다. 신평에는 진주강씨의 재실인 육선재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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