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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면 마송리 석장승1호(遠南面 馬松里 石長丞1號)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원남면 마송리 석장승1호(遠南面 馬松里 石長丞1號)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6. 26. 19:17


고향가는갈에 석장승을 보려고 하니 공사중인지 가려놓았다.

뭔일이 있나 하고 다시 찾은 석장승은 이쁘게 옆으로 장소이동을 했으며 그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부분을 더 올려놓았다

더욱 더 멋진모습으로 나를 맞이해준다.


마송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에 속하는 행정리이다.
마피동리와 송오리에서 각 한자씩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음성군 남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오리와 마피동리 일부를 병합하고 마송리라 하여 원남면에 편입되었다.


남동쪽에는 백마산이 있으며, 백마산에는 백마굴·작은 박쥐굴·큰 박쥐굴·감투바위·평풍바위·삼선암 등이 있다. 송오리에서 괴산군 사리면 노송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송오리고개, 주봉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내동고개 등이 있다. 마송천은 백마산 동북쪽 주봉리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보천리와 조촌리 등을 지나 초평면 초평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마송리에서 마송천에 유입되는 소하천으로는 오미도랑천과 샘터천이 있다. 송오리의 서쪽에는 송오저수지와 삼마상들이, 서북쪽에는 염부득들이, 북쪽에는 건너머들 등이 있다. 자래바위의 남쪽에는 수채들이, 동북쪽에는 요골들이, 북쪽에는 장성이들 등이 있다.


1978년에는 마송1리의 마을회관이 건립되었고, 1983년에는 마송3리에 간이 급수 시설이 설치되었다.

주요 기업체로는 엘리베이터 부품을 생산하는 효성엔지니어링, 조명기구를 생산하는 조양전기공업(주) 등의 제조업체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1970년대 말까지 간대(생터)·매봉재·바랑골(행정)·벌말·자라바우·송태·염소바우·오미(오산) 등이 있었다. 1980년대 말까지는 마송1리에 송오리(송오)·평촌(벌말)·양암(염소바위), 마송2리에 행정·간대, 마송3리에는 매봉재(약전)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마송1리에 범말(벌말 또는 평촌), 마송2리에 생터, 마송3리에 자라바우 등만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평촌에 김기화 유허비가 있고 오미에는 1968년에 고씨 문중에서 세운 고용진(高庸鎭) 효자문과 1940년에 고원희(高元熙)가 세운 법화사라는 절이 있다. 오미 앞 냇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돌장승 1호, 돌장승 2호, 돌장승 3호(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2호) 등이 있다. 1713년(숙종 39)에 무관 고증명이 지방 수호의 상징으로 세운 것이라고도 한다.

오미에서는 매년 정월 초 길일을 잡아서 제를 올리고 있는데 늦어도 정월 보름 전에 제를 지낸다. 자라바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오전 10시경에 동제를 올리고 있다. 송오리의 후래바위에서는 전에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주요 도로로는 서부로 청주~음성 간 국도 36호선이 남서 방향에서 북동 방향으로 달리고 있고 군도 14번이 분기되어 삼용리와 연결되고 있다. 면리도 201번이 보천리 보촌역에서 마송리로 연결되어 있다.





1호 장승(미륵형 장승)은 높이가 240㎝인데, 그중 약 80㎝가 얼굴이다. 앞면 너비는 40㎝ 정도이다. 얼굴은 장방형으로, 머리에는 관음보살과 같은 관을 쓴 듯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표시되어 있다. 눈썹은 거의 한일(一) 자이며, 눈은 눈망울이 매우 크며 앞으로 불룩 튀어나왔다.

오른쪽 귀는 약간 위쪽으로 붙어 있는 반면 왼쪽 귀는 아래로 처져 있다. 인중이 매우 넓으며, 입은 약간 반달형으로 다물고 있다. 턱밑을 깊숙이 들여 파내어 윤곽이 뚜렷하다. 손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마치 앞으로 두 팔을 모아 팔짱을 끼고 있는 것 같다. 몸통 부분에 명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지는 않다. 다른 장승과 마찬가지로 ‘靜界大將軍(정계대장군)’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배 중앙 부분과 다리 부분에 깊게 파인 구멍이 나 있는데, 6·25전쟁 때 미군의 총에 맞은 자국이라고 전한다.




장승은 마을 입구나 동제구역(洞祭區域)에 세운 마을 장승과 사찰 입구에 세운 사찰 장승, 그리고 지역 간의 경계로 삼거나 성문이나 병영(兵營)·해창(海倉)·관로(官路) 등에 세운 공공 장승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계표나 이정표로 삼기 위해 세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역질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 수호의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마을의 흉액을 밖으로 몰아내기 위하여 동제로서 장승제를 행하였으며,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비는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렇듯 장승은 엄연한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신성시하며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오미에는 3기의 석장승이 전해 온다. 2002년 3월 15일 충청북도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된 마송리 석장승들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에 세워진 것들이다. 청주고씨 집성촌이기도 한 오미 사람들에 따르면, 1712년 이 마을 출신 고중명(高重明)[1681~1765]이 무과에 합격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는 고중명이 무과에 합격한 해로부터 정확히 280년 전 윗대 조상인 고덕수(高德秀)가 1432년(세종 14)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 4위로 합격하고, 그후 15년 뒤인 1447년(세종 29)에 고덕칭(高德稱)이 식년시 정과(丁科)에 15위로 합격한 후 처음 맞는 경사였기에 이를 경축하고 기념하며, 자손 대대로 귀감으로 삼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