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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 각자 - 강시영(舍人巖刻字 - 姜時永)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사인암 각자 - 강시영(舍人巖刻字 - 姜時永)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2. 1. 22:07




사인암 암벽에 각자된 姜時永의 이름입니다

강시영(姜時永 1788-1868 正祖12年-高宗5年)은 本貫은 晉州이며 승지(承旨)인 강준흠(姜俊欽)의 아들입니다.

純祖19년(1819)에 庭試文科에 乙科로 급제하였으며 純祖29년(1829) 進賀使의 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습니다

1838년(헌종4) 副修撰 거쳐 忠淸道觀察使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철종5년(1854)에 大司憲을 지내고 1859년 禮曹判書가 되었습니다

글씨가 뛰어났으며 시호는 文憲입니다. 이 글씨는 충청도관찰사 시절 사인암을 찾아 새긴것으로 추측됩니다.




강시영은 본관은 진주(). 자는 여량(, ). 진창군() 강인()의 8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세정()이고, 아버지는 강준흠(), 어머니는 권빈()의 딸이다.

1819년(순조 19)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을 지내고, 1829년 진하사(使)의 서장관으로 정사 이광문()과 부사 한기유()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1838년(헌종 4) 부수찬을 거쳐 1843년 충청도관찰사, 1846년 행호군(), 1848년 한성부판윤·형조판서, 1854년(철종 5) 대사헌을 지냈으며, 1859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1866년(고종 3) 조대비가 수렴섭정()을 철회하고,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아 인사배치를 할 때 남인으로 기용되어 홍문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시호는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