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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각자 - 정의동,정광진,김규(舍人巖刻字 - 鄭義東,鄭光震, 金 珪)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사인암각자 - 정의동,정광진,김규(舍人巖刻字 - 鄭義東,鄭光震, 金 珪)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2. 18. 08:11



사인암각자 - 정의동,정광진,김규(舍人巖刻字 - 鄭義東,鄭光震, 金  珪)각자입니다.


정의동(鄭義東)은 1902년(광무 2) 단양군수(丹陽郡守)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친 정의동(鄭義東)이 군수시절 사인암을 찾아 각자한것이다.


정광진(,鄭光震)1703년(숙종 29)~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사원(士元)이고, 다른 이름은 정광충(鄭光忠)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증조부는 정두경(鄭斗卿)이고, 조부는 정일양(鄭一陽)이며, 부친은 중직대부(中直大夫) 행창릉직장(行昌陵直長) 정수륜(鄭壽崙)이다. 생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원주진관병마첨절제사(原州鎭管兵馬僉節制使) 정수곤(鄭壽崑)이다. 형은 정광겸(鄭光謙)과 정광익(鄭光益)이다.
1733년(영조 9) 식년시에서 진사 3등 6위로 합격한 뒤, 1746년(영조 22) 춘당대시에 응시하여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1755년(영조 31) 임금이 친히 정광충이라는 이름을 내려주고, 병조참지(兵曹參知)로 승진시켰다


김규(金  珪)1596년(선조 29)∼1613년(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서(子瑞)이다.
증조부는 김안도(金安道)이고, 조는 증의정부영의정(贈議政府領議政) 김오(金祦)이고, 부친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버지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이다. 모친은 광주노씨(光州盧氏) 광산부부인(光山府夫人)으로 노계(盧洎)의 딸이다.
전서(篆書)와 예서(隷書)를 잘 썼고, 12세에 선대(先代) 의정공(議政公)의 묘문(墓門)에 직접 해서(楷書)로 글씨를 썼다. 선조가 그에게 시를 짓게 하고서 칭찬하며 책을 내려 권장하기도 하였다. 1610년(광해군 2) 15세 때 경술식년사마시(庚戌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였고, 백주(白州) 이명한(李明漢)
과 절친했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永昌大君)
을 추대한다는 무고죄(誣告罪)에 연루되어 아버지 김제남과 3형제가 모두 옥사(獄死)했다. 후에 인목대비가 복위(復位)되면서 아버지 김제남은 영의정에, 김규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증직(贈職)되고 의례(儀禮)대로 제사지냈다. 도성 서문 밖에 거적으로 싸서 묻혔다가 고양(高陽)대자동(大慈洞)에 이장하여 예장(禮葬)을 지냈다.달성도위(達成都尉) 서경주의 딸과 결혼하여 1남 김홍석(金弘錫)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