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사인암각자 - 이계하(舍人巖刻字 - 李啓夏)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단양군(丹陽郡)

사인암각자 - 이계하(舍人巖刻字 - 李啓夏)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2. 14. 18:50


이계하(李啓夏)는 조선 후기 천안 지역의 목천 현감 및 직산 현감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양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를 지낸 이목연(李穆淵), 아버지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이인명(李寅命)이다. 이계하는 양 할아버지인 이목연이 목천에 향저를 마련한 것을 새로이 개축 정비하여 자손들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뒤 전주 이씨 선파(璿派)를 우대하여 이들을 대거 관직에 등용하고자 하였다. 이계하(李啓夏)는 1865년에서 1869년 사이에 선파 유생(璿派儒生)으로서 국왕의 응제시(應製詩)에 응모하여 『규장전운(奎章全韻)』 한 질을 하사받았다. 이계하는 특채 형식으로 관직에 발탁되어 1870년(고종 7) 12월 24일 종친부 참봉이 되어 벼슬을 시작하였다. 이후 종친부에서 주관하는 전주 이씨 선파들의 대종회에 감조관(監造官)으로 활동하였고, 1875년(고종 12)에는 조선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 수정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1879년(고종 16)에 목천 현감을 시작으로 양근 군수, 단양군수, 직산 현감, 덕산 군수, 청송 부사, 곡성 현감 등에 임명되어 오랫동안 외직에 종사하였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이 시작되어 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이계하는 황해도 연안 부사에 임명되어 해서 지방의 동학군 진압에 앞장섰다. 당시 이계하는 해주 판관, 초모사로 관직을 바꾸며 이듬해까지 동학군 토벌에 심혈을 기울였다. 대한제국 성립 후인 1905년 4월 10일 비서감승(秘書監丞)에 발탁되었지만 청원을 올려 벼슬을 사임하였다.직산 현감 재직 시에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1883년(고종 20) 충청도 암행어사에 의해 목천 현감 시절 비리가 적발되기도 하였다.


각자(刻字)는 이계하(李啓夏)가 단양군수시절 사인암을 찾아 각자한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