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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암각자 - 황은 (舍人巖刻字 -黃檃) 본문
황은(黃檃)은 조선시대에 제124대 단양군수(丹陽郡守)를 지냈다.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진사] 영조(英祖) 38년(176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10위(15/100)으로 급제했으며
자는 사정(士正) 경술(庚戌) 1730년 (영조 6)에 한성에서 태어났다. 공의 생부(生父)는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역임한 통정대부 황운하(黃運河)이며 행의릉참봉(行懿陵參奉)지낸 봉렬대부(奉列大夫)인 황정하(黃挺河)는 양부(養父)이다.
형이 두 분이 있었으니 황간(黃幹) 황반(黃班)이며 동생은 황채(黃菜)이다.
정조 9년(1785) 주형일(朱炯一)의 역모사건 조사 때에 이름이 거론되어 확인됨. <문헌>군선생안, 정조실록
봉렬대부 - 조선시대 정사품(正四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사품의 하계(下階)로서 봉정대부(奉正大夫)보다 아래 자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풍저창(豊儲倉)‧광흥창(廣興倉)‧전설사(典設司)의 수(守), 종친부의 전첨(典籤), 의정부(議政府)의 사인(舍人), 규장각(奎章閣)의 직각(直閣), 사헌부(司憲府)의 장령(掌令), 경연청(經筵廳)의 시강관(侍講官),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의 응교(應敎),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진선(進善)‧필선(弼善)‧겸필선(兼弼善),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좌익선(左翊善)‧우익선(右翊善), 성균관(成均館)의 사예(司藝)‧사업(司業),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 통례원(通禮院)의 봉례(奉禮), 사옹원(司饔院)‧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예빈시(禮賓寺)‧전설사의 제검(提檢), 종학(宗學)의 도선(導善) 등이 있었다.
직각, 시강관, 예문관응교, 세손강서원우익선, 편수관, 도선은 모두 예겸(例兼)하였다. 처(妻)에게는 영인(令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
통정대부 - 조선시대 정삼품(正三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삼품의 상계(上階)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보다 상위 자리로 당상관(堂上官)의 말미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돈녕부(敦寧府)의 도정(都正), 의빈부(儀賓府)의 부위(副尉)‧첨위(僉尉), 종친부‧상서원(尙瑞院)의 정(正), 비변사(備邊司)‧교서관(校書館)‧승문원(承文院)‧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전옥서(典獄署)의 부제조(副提調), 육조(六曹)의 참의(參議), 병조(兵曹)의 참지(參知), 규장각(奎章閣)의 직제학(直提學), 승정원(承政院)의 도승지(都承旨)‧좌승지(左承旨)‧우승지(右承旨)‧좌부승지(左副承旨)‧우부승지(右副承旨)‧동부승지(同副承旨),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 경연청(經筵廳)의 참찬관(參贊官), 홍문관(弘文館)의 부제학(副提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찬선(贊善),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좌유선(左諭善)‧우유선(右諭善),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 춘추관(春秋館)의 수찬관(修撰官), 등이 있었다.
부제조, 직제학, 참찬관, 수찬관, 상서원정은 모두 예겸(例兼)하였다. 처(妻)에게는 숙부인(淑夫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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