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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미원리 남양홍씨 충효각중수비(米院面 米院里 南陽洪氏忠孝閣重修碑) 본문
미원면 미원리 미원지구대옆에 자리하고 있는 남양홍문충효각중수비입니다.
비석의 내용을 살펴보면
충은 나라의 표준이요.효는 모든행동의 근본이다.조약손(祖若孫)두분은 충효를 겸전하고 손부 또한 효성지극하여 이에 감동한 임금님은 각기 증직과 아울러 정려의 전을 내렸으니 바로 남양홍씨충효각이다.
만계 홍석무선생(1611~1667)은 세살때 아버님을 여의고 아홉살때 모부인 병환에 필요한 생선을 구하러 금강탁류를 바라보며 굽어보며 울고 있으니 갑자기 큰 물고기가 튀여올라오는 이적이 일어났다. 이는 실로 지성이 감천하여 생기는 일이더라.
십칠세 모부인 장례에는 피눈물로 초종의 예를 다했고 삼십세에 청하현감으로 부임할제 백씨(伯氏)앞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제 비록 차자이나 부모님 신주라도 모시게 해주시면 궁천의 한을 만의 하나라도 풀까 하옵니다. 이에 동감한 백씨 또한 눈물로 이를 허했다.동헌뒤에 가묘를 모신 공은 매조기 참갈을 비롯 출필고반피련과 봉사에 이르기까지 지성을 다하니그 효행이 본보기가 되여 현민이 모두 감화하여 그 기풍은 화민성속되여 절로 대치하니 이로써 고만에서 다시 삼년 유임된바 있다.
이로부터 역전현군 삼십년에 덕치와 청백으로 도처에 군민이 세운 선정비가 넷이요 방백의 포계로 전후 하사받은 표리가 육습이요 사마가 한필이다.
만은 홍주화선생은 만계공의 손이요 우암 송선생의 문인이다.
효부 전주이씨는 만은공의 부인이니 두분 모두 행실이 비에 새겨있으므로 생략한다.
이 각은 순조년간의 창건으로 백여년후인 정미년에 중수한바 있고 다시 십구년후인 병인봄에 그 후손들이 뜻모아 중수추진회를 구성하고 구표,성욱,운표,광표,제씨 주도아래 모은 성금과 유지 결금으로 사월착공하여 오월 완성하니 터도 높았고 건물개축과 새 단청으로 면목이 일신되였다
구표보 그 중수기를 불녕에게 청한다.
겸하여 사적비 중수비 모두를 구표씨 독단이라는 사실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본다.
훌룡한 조상님들의 거룩한 충효정신은 이 정각을 통해 그 찬란한 빛을 자손만세에 남겨주었고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 또한 조상님에게 비치게 되니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름지기 이 각은 홍씨일문의 청전구물이라기 보다는 우리 국민정신의 산 교육도장으로 삼았으면 한다
단기 4319년(1986) 병인 구월 고령 신철우조기 후손 홍구표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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