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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장암동 노긍 묘소(壯岩洞 盧兢 墓所) 본문
장암동에 위치한 장군바위라 불리는 폭서암(曝書巖)에서 나는 한원이라 호를 쓰는 교하인 노긍선생을 만났다.시대를 잘못 만난 어찌보면 철저한 아웃사이더가 될수밖에 없었던 한원선생, 한원선생에 대하여 여러 자료를 찾으며 먼 세월을 되집어 노긍선생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착각을 했을까? 문득 현 세상에 남아있는 한원선생의 자취를 찾아보고 싶었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여 장암리 마을회관 뒷산에 자리한 한원선생의 묘소를 찾았다.1983년 4월 후손에 의해 비석을 세우기전 철저히 세상에서 배제되어 잔반으로 세상을 하직했던 한원선생의 세상을 향한 외침. 넘을수 없었던 그 시대의 관료주의와 파벌주의.그리고 철저히 낮아짐.그렇게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좌절한 조선의 지식인을 볼 수 있었다.
한원선생은 아내를 앞세우고 자식을 앞세우고 철저히 몰락한 잔반으로 세상을 살면서도 자신의 확고한 정신세계는 잃치않고 시대를 앞서가는 많은 글과 한시를 남겼다.
우거진 풀숲을 헤치고 오후햇살 따가운 가을 끄트머리 나는 한원선생을 만났다. 오랜세월이 지나 낮선 한 남자의 방문에 어색할수도 있겠지만 한원선생은 나에게 반가운 모습을 보이는 듯 하다. 한참이고 묘지앞에 앉아 그 시절의 한원선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 당시 한원선생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 물음은 내 가슴속에서 나에게 던지는 한 소리 같았다. 세상 향한 냉소와 자의식의 산문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한원선생 그가 나에게 묻는 듯 했다. 너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
후손들에 의하여 1983년에 후보된 상석과 비석 그리고 망주석2기가 있다.옆에는 부친인 노명흠의 묘소가 있다. 한여름 시원한 소나기소리에 취우(驟雨)라는 한시를 적은 노긍의 여유로움이 한시에 가득하다.
風痱自閉燕雛驚(풍비자폐연추경) 바람이 꽝 사립을 닫자 제비새끼 놀라는데
急雨斜來谷口平(급우사래곡구평) 소낙비 빗겨 드니 곧 어귀로 몰려가네.
散入靑荷三萬柄(산입청하삼만병) 흩어진 푸른 연잎이 삼만 자루에 쏟아지자
嗷嘈盡作鐵軍聲(오조진작철군성) 떠들 썩 온통 군데 갑옷 소리로다.
조추(早秋-이른 가을)
澹雲疎柳共爲秋 엷은 구름과 잎이 듬성듬성한 버드나무 둘 다 가을인데
閒看池塘水氣幽 한가롭게 연못을 바라보니 물기가 그윽하네.
靑鳥掠魚頻不中 물총새가 물고기를 잡으려다 자주 놓치더니
還飛端坐碧蓮頭 푸른 연밥 꼭대기에 도로 날아와 단정하게 앉아 있네.
穉孫(치손) / 盧 兢(노긍)
穉孫纔解歩(치손재해보) 어린 손자 이제 겨우 걸음 떼는데
引我入瓜田(인아입과전) 날 끌고 참외밭에 들어가누나.
指瓜引指口(지과인지구) 참외를 가리키곤 자기입 가리키니
食意已油然(식의이유연) 먹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걸세
노긍선생 사후 20여년이 지나 문인이였던 황득효에 의해 1808년 여름 장군암에 각자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노긍선생이 꿈꾸던 세상이 되었나? 아직도 기척없는 노긍선생의 생각을 우리는 언제쯤 들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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