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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가산리 청주한씨재실(南一面 駕山里 淸州韓氏齋室)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가산리 청주한씨재실(南一面 駕山里 淸州韓氏齋室)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9. 11. 26. 19:57

 

 

 

 

한가한 날이다.몇 번이고 가본 곳이지만 아둔한 머리는 항상 무언가를 놓치고 또 발걸음을 하게한다.교하인 노긍의 묘소를 찾다가 교하노씨와 청주한씨와의 산송(山訟)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겸사겸사 또 한란의 묘를 찾게되었다.

 

 

 

갈 때마다 굳게 닫혀있어 안을 보지를 못했는데 이번 발걸음에는 세일재(歲一齋)가 가슴열고 맞아준다.청주한씨 시제가 있었나 보다. 세일재는 청주시 향토문화재 15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세일재와 관련있는 인물은 한용화인데 1793년 한확(韓確)의 신도비 대석(臺石)을 보수할 때 여러 일가들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이 사업을 완수하였고,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시조인 한란의 청주 산소에 참배하고 그 재실을 보니 기둥이 기우러지고 담장과 뜰이 허물어졌으며 또 건축한지가 100년이 지난지라 몹시 노후(老朽)되었음을 보고 곧 자기 녹봉에서 출연(出捐)하며 일가들과 힘을 모아 두해를 걸쳐서 공사를 마치고 그 재사(齋舍)의 이름을 세일재(歲一齋)라 하는 등 조상의 일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고려건국 공신 및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한란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아버지는 한지원(韓智原)이다. 형으로 한만, 한간이 있었으며, 동생은 한영이 있었다.한란(韓蘭)[?~?]은 청주한씨의 시조이며, 그 선계(先系)는 기자(箕子)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란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그곳에서 향학(鄕學)을 일으켰다고 하며 그가 교육을 실시했다고 하는 강당터가 전해오고 있다. 40세 무렵에 상당구 방서동(方西洞)으로 이거하여 주거지로 삼으면서부터 그의 후손들을 청주한씨로 부르게 되었다.이곳에서 한란이 정방형의 우물을 파서 식수와 용수로 사용했던 우물을 방정(方井)이라 하는데 이 우물은 방정리(方井里)·방서동(方西洞) 지명의 유래가 된다. 한란은 마을 언덕에 무농정(務農亭)을 짓고 인근의 넓은 농토를 개척하여 부호(富豪)가 되었다고 한다.928년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하여 청주를 지날 때 한란은 왕건을 군례(軍禮)로 맞이하고 창고의 곡식을 풀어 하루 동안 왕건의 10만 군대를 배불리 먹였으며, 왕건과 함께 종군(從軍)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한란은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 되었으며, 벼슬은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 太尉)에 올랐다.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묘소 아래의 세일제(歲一齋)에서 매년 10월 1일에 제향한다.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가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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