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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 춘향사당(南原 廣寒樓 春香祠堂) 본문
광한루에 위치하고 있는 춘향영당입니다.
최초의 춘향 영정은 춘향사당이 건립되던 1931년경에 제작된 강주수 화백의 작품이다. 그뒤 1939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첫 번째 그린 작품을 현준호가 기증하여 봉안하였으나 한국전쟁 중에 춘향 영정이 훼손되자, 1961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다시 그린 것을 당시 내각수반이던 송요찬 장군이 기증하여 현재까지 봉안하고 있다. 진본은 남원시 향토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춘향 영정은 미인도 형태의 춘향상을 그린 이당 김은호의 유화작품 한 점(가로 122㎝×세로 203㎝)과 진주화백 강주수의 작품 한 점(가로 70×세로 170㎝), 1931년 일본 식산은행 임씨 성의 은행장(두취)이 페인트로 즉석에서 그렸다고 추정되는 작가 미상의 유성 페인트작 한 점(가로 68×세로 106㎝) 등 총 세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춘향 영정은 한국의 여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미인도 개념으로, 역사적 여인상을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다. 진주 출신의 강주수가 만든 작품은 물론이고, 1939년에 고고학자와 조각가, 문화사, 연출가 등이 총체적으로 참여하여 조선 기생 김명애를 모델로 하여 전신상으로 김은호가 제작한 점도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당 김은호 작품집』에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 영정, 또는 춘향 미인도의 두 번에 걸친 제작 경위에 대해, “지금은 1961년에 예전과 똑같이 다시 그린 춘향 그림이 걸려 있지만 남원 춘향사당의 원래 작품은 1939년에 제작되었다.
그 전년도에 서울에서 한 극단이 「춘향」을 공연한 데서 비롯된 이 춘향상은 당시 광주의 호남은행 현준호 은행장이 재정적인 후원을 하고 송석하·김태준·유치진 등으로부터 춘향상의 형태에 대한 다각적 조언을 받아 착수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무참히 파괴되어 그후 현재의 간청으로 이당이 다시 그리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춘향 영정이 서울에서 제작되어 열차 편으로 남원에 도착할 무렵 남원역에는 남원시민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는 기록에서 춘향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강주수의 작품과 작가 미상의 작품 한 점을 포함한 춘향 영정은 고전적인 영정 제작 방식이 아닌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전통적인 녹의홍상의 미인도로서 제작됨으로써, 그 역사적 가치와 함께 남원 문화의 중심인 춘향 문화의 상징으로 빛을 발휘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남원] ”광한루 춘향영정 다시 그려야“ 여론 비등, 왜? < 남원・임실・순창 < 지역 < 기사본문 - 전북의소리 (jb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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