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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공원 김효성청백선정비(中央公園 金孝誠淸白善政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중앙공원 김효성청백선정비(中央公園 金孝誠淸白善政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2. 1. 20:49

 

 

김효성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행원(行源)이다.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김수연(金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승지를 지낸 김세정(金世鼎)이 아들이다.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정조(鄭造)·윤인(尹認)·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고부천(高傅川)·김태우(金太宇) 등 24인과 함께 정조·윤인·이위경 등 3인의 목을 벨 것과 귀양가 있는 이원익(李元翼)을 다시 부를 것을 주청하였다가 길주(吉州)로 유배당하고 뒤에 진도로 이배되었다.1623년(인조 1) 인조반정과 함께 복관되어 의금부도사를 제수받고, 청안현감(淸安縣監)이 되었다. 1625년 잠시 관직을 떠났다가 이듬해 호조좌랑에 올랐다. 정묘호란 때 강화도로 왕비를 호가하였고, 1628년에 괴산현감(槐山縣監)과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역임하였다.

 

 

 

1634년 한성부서윤·형조정랑·군기시첨정 등으로 있다가 1635년 여산군수로 부임한 이래 남원부사·죽산부사·공주목사·청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칠곡부사(漆谷府使)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오랜 외직생활 동안 선정을 베풀어 청빈한 목민관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또한, 무예에도 조예가 있어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과 위장을 맡기도 하였다.

1650년(효종 1)에 청주목사 재직시 선정으로 청백(淸白)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졌는데, 청주 중앙공원(中央公園)에 현존한다.

 

 

 

비석의 크기에 비해 음각된 글씨의 크기가 비례가 맞지 않으며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는하나 귀부역시 조금은 치졸한 느낌입니다.

이수는 투박하나 나름 웅장한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